1부 흙이 말이 되는 시간
아이들은 어떻게 작업을 할까.
아직 세상에 입혀지지 않은 아이들의 처음은 어떤 모습일까.
오래된 내 마음속 질문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공사장에서 땅을 파다 만 포크레인이
덩그러니 있는 것처럼,
나의 작업은 멈춰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급해진 내 마음과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자연은 나를 품어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서울을 벗어나
춘천으로 향했다.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낡은 집을 빌려
작은 작업실을 꾸렸지만,
정작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사오월쯤이라 모종 심기를 하면 좋을 시기였다.
지인을 통해 열 평 남짓한 땅을 빌려
텃밭 가꾸기를 하며
한동안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흙을 만지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무엇과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벗어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평온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아니,
붙들 수 있는 것이 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에도
내 마음속에는 같은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럴 때쯤,
나를 걱정하시며 아껴주시던 은사님께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라고 권하셨다.
그리고
작업을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이셨다.
그런 연유로
나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작은 아이들이었다.
주소를 들고 찾아간 그곳은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의 적지 않은 거리를
가야 도착하게 되는 곳이었다.
버스 안에 앉아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갔다.
아이들은 어떠할까.
아이들에게서 난 무엇을 배울 수가 있을까.
그리고
너무 어린아이들을 데리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될까 봐
조금은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의심 어린 마음도
한편에 함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은
꽤 시골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그곳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너른 밭이 펼쳐진 언덕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커다란 붉은 벽돌 건물.
차갑고 맑은 날씨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봄이 오기 전, 이월경이라
너른 밭은 황량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군데군데 올라온 작은 싹들은
전원적인 풍경을 자아내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내가 뭔가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처음’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
아직 세상에 입혀지지 않은 상태를
다시 보고 싶었던 마음에 더 가까웠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기보다는
확인하려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의 나는
무엇을 하게 될지보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시작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