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자작시 - 비데를 위한 소네트

내 영혼을 맑게 해주는 그대에게

by 서쪽 숲나라


비데(bidet) - 스펠링에서 느껴지듯이 프랑스 태생으로서 루이 14세 때 처음 등장했으며, 여성병 예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 전용 세척기였다고 한다.


오래 전, 비데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는그저 괴상하게 여겨졌다. 변기 내부에서 물줄기가 솟아져 나와서 중요 부위를 세척해 준다니... 어우, 상상만 해도 남사스럽고 민망했다. 내 안의 꼰대가 심기 불편해질 만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비데가 점점 상용화되고 드디어 우리집 화장실에도 놓이게 되어서 나 또한 발을, 아니 엉덩이를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걸 굳이 써야하나 싶었다. 휴지만으로 충분한 뒷처리를 물까지 동원해서 한다는 게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이고 유난 떠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관이 되고 나니 세상 개운하고 편리할 수가 없었다. 손을 안 대고도 그 곳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니. 처음엔 이질감에 소스라쳐졌던 물줄기 어택도, 굉장히 심각하고 진중하게 들리는 기계음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리고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내 몸을 귀한 손님 대접하듯이 정갈하게 모시는 느낌이랄까.


사실 비데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찬가를 늘어놓기 위해 잡은 소재가 아니었다. 우리집 비데가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그 불편함과 미처 의식 못했던 소중함을 털어놓으려 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비데의 수많은 이점을 찬양하느라 비데가 고장났다는 현실이 묻혀버린 것이다. 어쨌든 뜬금 소재가 되어 시 한편을 선사해 준 비데(단언컨대 내가 썼던 소재 중 존재감 원탑이다!)에게 감사를 드리며, 내일 당장 AS신청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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