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왜 사세요?

살면서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by Mimyo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22살치고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지나치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눈치를 보고 사람을 대할 때 조심조심스럽게 대할 때가 많았다. 어릴 때야 아주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우울증이 심해지고 나서부터는 삶의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전 글에서도 많이 적었지만 '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가 제일 큰 질문이었고 이제 추가적으로 시작되었던 질문은 ' 다른 사람들은 왜 살까? " 였다. 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렇게 수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데 대체 다들 왜 살고 있는 걸까?





2년 전 내가 우울함과 공허함에 헤엄칠 때, 내가 왜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느꼈던 이유 첫 번째는 일단 계속 잡고 있던 내 꿈을 놓아버려서가 가장 컸고 두 번째는 사람은 다 고통스러워하는 부분들을 안고 있으면서, 그걸 포기 못하고 계속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악하는 거 같아 추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죽음이 구원 같았고 희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밥 먹고 배설하는 것이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만족을 위해 치장을 하는 것이나 노동력을 제공해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 쓸모없이 느껴졌다. '왜 저렇게 다들 열심히 살까? 사실 이렇게 경쟁하고 애쓰면서 까지 살고 싶지는 않잖아.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잖아. 어차피 죽으면 부질없는 것인 걸 뻔히 알면서 대체 왜? 가식적인 인간들... 모두 그렇게 열심히 기 쓰고 용쓰면서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잖아.. ' 라며 정말 사춘기 하이엔드 버전(?)으로 생각했었다.

저렇게 속으로 '난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하면서도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 결국은 난 현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고 지금 내 속이, 내 상황이 지옥 같으니까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환경 탓을 하면서 예전처럼 의욕 넘치게 살았던 그때로 너무나 돌아가고 싶었던 것을. 사랑이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없었고 타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혐오감으로 인해 나를 해하려고 하자 마음속 깊숙이 있던, 인간으로서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진심이 튀어나와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들어 준 것이다.



나를 파악하고 순서를 정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다. 자존감 바닥인 내가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말로만 '나 자신 사랑해~'라고 백날 말해봤자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행동과 환경을 먼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려 노력했다. 전 글 중 ‘우울증을 무기로 삼지 마라’에서 구체적으로 적었던 내용인데 무엇을 소비하게 될 때도 대충 고르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으로 사서 만족을 느끼고, 자극적인 음식을 좀 줄이고 건강한 음식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가 있나 찾아보고 먹었다. 좋은 감정을 우선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본디 사람은 한순간 한순간 신중하고 그것에만 집중하면 다른 생각은 못하게 되지 않나. 그걸 이용해서 최대한 우울한 생각을 못하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걸 행해서 만족하는 버릇을 들였다. 그래서 관심도 없던 식물을 사보기도 하고 이참에 낡았던 지갑도 바꾸고 매니큐어로 새로 사서 발랐다. 돈만 쓰는 거 같지만 술 먹는 비용을 대폭 줄였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 게다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련하니 만족도가 높았다. 이렇게 순전히 내가 생각하고 끌리는 대로 하니까 자연스레 환경에도 시선이 옮겨지게 되었다. 예전에 세세하게 느끼지 않고 흘려보냈던 것들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물건, 음식, 환경에 애정을 쏟으니 자연스럽게 나를 존중하게 되었고 웬만하면 좋아하는 걸 우선시로 하되 여건이 되지 않아 덜 좋아하는 걸 사게 되거나 먹게 되어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타고난 성격 상 감정의 높낮이가 있었지만 습관을 좋게 들이니 감정이 가라앉을 때 예전보다 훨씬 침착해졌으니 꽤 변화한 셈이었다.


그래서, 이쯤 되니 삶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타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러 책도 읽어보았다. 모두 자신이 만들었든, 실제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든 힘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제각기 달랐지만 통합적으로 보면 '사랑'이었다. 가족의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자신의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지구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무엇을 사랑하기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 많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 속에 지옥이 있을 땐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끈을 놓아버리는 경우이지 않나. 우리가 사랑해도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는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다들 죽지 못해 산다고들 많이 하고, 나 또한 그랬고. 그리고 어느 순간 자연히 깨달은 거 같다.





그 당시 조금 오글거리지만 블로그에 적었던 글


그렇게 고심해놓고 나온 결론은 이 글을 기대하고 본 사람들은 좀 허무하다 싶을 수 있다. 나도 이걸 깨닫고 허무했지만 이내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삶의 이유는 크고 거창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는 없다. 살아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 '이유'라는 게 없다는 뜻이다. 쓸모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고, 고통을 회피할 필요도 없는 우리는 그저 하나의 생명일 뿐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해내고 싶은 것만 해내면 된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나 삶의 의미는 자신이 만들어 가고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후로 정말 진심으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줄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고통은 분명히 여전히 어렵고 힘들게 느껴져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사라졌다거나 삶의 권태감이 사라지진 않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일단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


아쉬탕가 요가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얘기하셨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건, 매일 같은 해바라기를 보고 그림을 그려도 다른 순서로 그리게 되고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그 날 어떤 감정과 환경인지에 따라 생각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애인에게 천천히 마음이 식다가 어느 날 갑자기 권태가 확연해져서 이별하듯이, 이다지도 인간은 한순간의 결정으로 앞으로의 환경도 상황도 변한다. 심지어 나쁜 감정이나 나쁜 말을 어린아이도 더 쉽게 배우듯 우리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더욱 와 닿게 느낀다. 이것을 어떻게 고쳐가고 습관을 들여가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남은 인생이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성장한 것은 확실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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