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시작은 기도다. 예수님과 부처님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될 차례다.
“음… 지난주에… 남편분과는 불교 기도를 해드렸고, 따님과는 천주교 기도를 해드렸는데… 오늘은 두 분 다 계시네요. 샴푸 전에 어떤 걸로 함께 기도해 드릴까요?”
나에게는 종교가 있을 리 없었다. 신이 있다면 평화롭게 기도하는 게 아니라 따지고 싶었다.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일정하다는데, 불행을 쏟아부은 내 삶에 대한 신의 의도를 묻고 싶었다. 양 조절에 실패한 내 삶을 보상해 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신이 완벽하다면 유일한 실수는 내 삶일 것이다.
번호표를 뽑거나 대기 예약을 걸어 놓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에겐 신을 만나는 것마저도 사치로 느껴졌다. 주말이면 평일보다 높은 시급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성당이나 교회에 갈 수 없었다. 한없이 자비롭다는 신을 만나는 것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딸은 나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나 보다. 가톨릭 기도를 하겠다고 나서는 겨울이를 보니, 주말이면 온 가족이 성당에 가는 화목한 가정을 꾸린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에는 없는 나의 삶도 조금은 평안했을까? 나와 산을 오르고 절에도 다녔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기억났다. 그리고는 노부부가 함께 올랐을 꽤 다정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게 정말 나의 마지막 삶 속이라면, 신이 저지른 실수가 조금은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예수님의 승리다. 지난주엔 부처님이 이겼으니 막상막하랄까.
무슨 종교가 되었건 기도하는 순간은 마음이 평온해진다. 기도의 모양새와 상관없이 호스피스 병동엔 예수님과 부처님의 합동 작전이 펼쳐지는 게 틀림없다. 성호경을 그으며 다같이 시작된 기도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봉사자들과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의 힘이 무섭게 전달되었다. 심장이 말랑해질 것 같은 무서운 힘. ‘감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뻔했다.
기도가 끝나자 부산스러운 샴푸 준비가 시작되었다. 꼼짝 않고 있던 침대가 움직여졌다. 리모컨 같은 걸로 병실 침대의 높낮이나 등받이가 움직이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래에 바퀴가 달린 줄은 처음 알았다. 벽에 붙어 있던 침대를 조금 빼놓더니 머리맡에 봉사자가 한 명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샴푸해 드릴 거예요. 그냥 편하게 누워 계시면 되니까 걱정 마시고, 혹시 불편한 부분 있으면 말씀 주시거나 손들어 주세요.”
왼쪽 관자놀이에 한 명, 오른쪽 관자놀이에도 한 명, 총 세명의 봉사자가 붙어 섰다. 그 옆에는, 본인이 해보겠다고 떠들어 댈 땐 언제고 마치 무시무시한 수술이라도 받는 듯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겨울이다.
내가 누워 있는 침대를 편평하게 펴고 머리를 들어 올려 베개를 뺐다. 베개가 있던 자리엔 커다란 플라스틱이 놓였다.
“이건 침대에서 머리 감으실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목 불편하진 않으세요?”
목이 좀 불편했지만 대충 참고 넘기려는 데, 찡그린 내 표정을 눈치챈 봉사자가 목에 수건을 하나 덧대어 놓았다. 한결 편안해진 상태로 샴푸가 진행되었다.
“물 온도 어떠세요??”
정수리 쪽으로 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머리맡에 서 있던 봉사자가 주전자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일 거라고 상상했던 미래가 이렇게 아날로그 일 줄이야. 주전자 주둥이를 통해 내려오는 물은 따뜻하게 두피를 적셨다. 클래식 이즈 베스트.
왼쪽 관자놀이에 있던 봉사자는 내 두 귀를 막고 있었다. 아마도 귀에 들어가는 물을 방지하려는 것 같았다. 오른쪽 봉사자의 손 끝에서 풍성한 거품이 나오기까지 두 번의 샴푸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머리를 못 감아서 기름기가 많았겠지...’
여든의 할머니라고 부끄러움을 모를까. 머쓱해지려는 찰나 오른쪽에서 풍성한 거품을 내던 봉사자가 말했다.
“머리카락 색깔이 참 예뻐요~ 반짝거리는 은색 머리칼이 우아한 분위기예요.”
정성스럽게 샴푸 하는 손가락만큼이나 부드러운 말이었다. 머리를 받치고 있던 플라스틱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가 침대 옆에 놓인 통을 채워갈 무렵 샴푸는 마무리되었다. 양손으로 내 귀를 막고 있던 봉사자는 플라스틱 샴푸 기구와 물이 가득 찬 통을 가져갔다.
나머지 두 봉사자가 미리 준비해 논 헤어드라이기로 내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병실 침대에 누운 채로.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귀찮더라도 머리 바짝 말려드릴게요~ “
“감기… 드릴게요~”
봉사자가 하는 말을 겨울이가 따라 한다. 여전히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착착 진행된 샴푸가 끝났다.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강해가 병실 침대 옆, 작게 붙어 있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겨울이에게 내밀었다. 특유의 귀여움을 장착한 겨울이가 봉사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씩씩하게 말했다.
“우리 할머니 머리 감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합이 아주 잘 맞는다. 각자의 역할에 맞춰 손발이 척척 맞는 봉사자들,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손자 겨울이와 딸 강해, 이 모든 걸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남편 강하준까지... 뜰 앞의 잣나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