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담아 두기까지
“ 어떻게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
내가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연륜 있는 봉사자들 틈에 젊은 봉사자가 함께 하는 모습이 흔치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의 삶이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았던 게 첫 시작이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길 바랐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가진 게 별로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새벽 미사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나에게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라.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보답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연히 알게 된 호스피스 봉사는 이 말을 실천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엔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흔히들 호스피스 병동은 슬프고 어두운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런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면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환자들을 눈에 담을 시간조차 없었다. 낯선 환경에서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하나하나 배우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봉사가 익숙해질 때 즈음, 환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기간 입원한 환자, 유난히 발 마사지를 좋아하는 환자, 목욕을 위해 한 주를 기다렸다며 반가워하시는 환자… 그러던 어느 날. 감기가 걸려서 한 주를 쉬고 2주 만에 봉사를 가게 된 날이 있었다. 병실에 들어서자 한 환자와 보호자가 반가워하며 안부를 물으셨다. 그 환자는 폐암으로, 최근에는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호흡기 없이는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내 손을 꼬옥 잡고 지난주에 감기로 못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작고 야윈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병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그 후로 나를 기억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환자와 보호자가 생기자 마음이 아파서 봉사하러 가기 힘들었다. 환자의 고통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함께 아파하기 시작했고 보호자와 함께 눈물을 삼키는 날들이 많았다. 나에게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좀 갖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한 봉사. 잘못된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였다. 내가 다치기 싫어서 환자들을 마음에서 멀리하게 되었다. 최대한 기억하지 않으려 했고, 마음에 담지 않으려 했다. 반쪽짜리 봉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위한 봉사라고 생각되어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봉사하고 있다. 물론 반쪽짜리 봉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생긴 건 아니다. 그저 나의 것을 나누려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뿐이다. 여전히 눈물을 삼키는 날도 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을 주고 함께 아파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흘러가는 봉사 중에 잠깐씩 묵상하는 순간이 생겼다. 발 마사지를 하면서, 샴푸를 하면서, 목욕을 하면서 그리고 환자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그 순간에 머문다. 그저 신이 함께해 주시길 기도한다.
그래서 이제는 봉사할 때 환자들을 마음껏 마음에 담아두기도 하고, 마음껏 기억하기도 한다. 환자 그리고 보호자와 이야기 나누는 것들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은 그들의 아픔이 내 일상의 슬픔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간다.
봉사를 통해 내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건강까지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값진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내 삶은 선물이 되어 감사로 가득 찼다. 이런 하루를 사랑으로 채워 가는 것이 봉사인 것 같다.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미루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 한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청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30대에 막 들어선 지금. 아직도 다른 봉사자들보다 나이가 적은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나는 이런 칭찬이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진다. 다른 봉사자들이 오랫동안 묵묵히 봉사해 온 시간을 알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들처럼 따뜻한 손길을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 벌써 그리운 30대 초반의 내가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