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에서 열린 작은 전시회
십 년이라는 시간을 호스피스 병동과 가깝게 지냈지만 기억은 늘 쉽게 휘발된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아쉬운 마음도 있다. 혹여 무겁고 슬픈 기억이 있다면 가볍게 툭 달아난 기억이 고마울 법도 한데, 아무리 되돌아봐도 그런 기억은 애초에 없던 것 같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자로서 함께 한 20대, 30대 그 10년의 시간은(물론 공백도 많았다.)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했던 것 같다. 호스피스라는 곳이 그럴 수 있는 공간인가 싶겠지만...
망각하는 따뜻한 기억들이 아쉬워서 한 주, 한 주 나의 감정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나는 월요일 호스피스 봉사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면 그곳에 마음을 조금 떼어 두고 온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을 내어 호스피스 병동을 떠올리는 게 참 어색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환자분들은 꽃님이라는 나만의 애칭으로 불러보려고 한다.
우리 호스피스 병동에는 지난 몇 주간 들꽃 같은 할머니의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병동 복도를 가득 채운 할머니의 작품은 눈을 떼기 힘들 만큼 멋졌다. 지각을 밥먹 듯하는(우리 팀원 여러분 죄송합니다...ㅎ) 나의 다급한 발걸음도 잡아 놓는 작품들이었다. 그날은 복도를 누비며 봉사하다가도 할머니의 그림 앞을 지날 때마다 멈춰서 바라보곤 했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좋아하기도 하고, 고이 간직한 화가라는 작은 꿈이 있어서 더 마음이 닿았던 것 같다.
꽃님의 생애 첫 전시회였고, 그간 그려온 작품들을 아쉬워한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병동내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었다. 멋지고 소중한 전시회 잘 봤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어서 마음이 꿈질꿈질했다. 준비한 멘트를 목구멍에 눌러 담고 꽃님의 병실에 갔는데, 급격하게 안 좋아진 컨디션 때문에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팀 봉사자들은 하나같이 목청껏 말했다.
”작가님~ 전시회 너무 잘 봤어요. 작품 멋져요! “
이럴 때 우리 팀원들의 팀워크가 빛을 발한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환자. 의식이 저하되어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걸 뻔히 알고도 미리 짠 듯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적막에 대항하듯 더 밝게 첫 전시회 축하를 전했다. "다 듣고 계시죠?"라고 되물었을 때, 떨리는 눈꺼풀과 호흡, 손짓으로 반응해 주셨고 우린 손을 꼭 잡아 드렸다.
어떤 작품이 좋았는지 감상평을 나누는 건 들꽃 할머니를 간병하던 가족들의 몫이었다.
봉사를 마무리하고 보니, 호스피스 병동 한편에 전시회를 관람한 사람들의 방명록이 붙어 있었다. 많은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글귀가 있어서 한참을 서 있었다.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사랑해요.' -OOO-
마지막에 쓰여 있던 건 내가 아는 이름, 조금 전 병동을 돌며 발마사지를 해드렸던 다른 꽃님이었다. 17살의 꽃님이라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아프지 말라고 말하는 한 마디가 마법의 주문이 되어, 오늘 할머니의 밤은 덜 아프고 평안하길 바랐다. 그리고 17살 꽃님의 밤도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