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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Aug 26. 2024

세 번째 시아버지와 얼굴도 모르는 남편들

호스피스 자원봉사 이야기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 본다면 기혼은 아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자원봉사를 나가는 월요일이면, 나는 며느리가 되곤 한다.

호스피스 병동 세 곳에서 자원봉사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 병동에만 국한된 경험일지도 모르지만, 자원봉사자의 연령대가 대부분 50-60대였다. 간혹 30-40대를 보기도 하지만 처음 20대에 봉사자로서 병동에 갔을 땐 사람들이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좋은 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막내로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 (물론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ㅎㅎ) 우리 팀은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팀원이 구성되어 있다.

병동내 꽃님들과 보호자들도 막내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해 주시는데, 고마운 마음과 쑥스러운 마음이 늘 공존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어리다는 표현은 맞지 않은 것 같고 조금 더 젊은것뿐이다. 그런데 병동에서 만나는 보호자분들은 어린 나이에 기특하다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신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 내에서는 무거운 책임감과 과중한 업무, 직급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 안에서 답답한 일상을 살아간다. 실수를 귀엽게 용서해 줄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고, 뭐든 척척 해내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그렇게 딱 애매하고 일 많이 할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월요일마다 사랑받는 막내가 되는 경험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일주일간의 까불 에너지를 가득 모아서 월요일에 방출하곤 한다.


이런 나에게 최근 세 번째 시아버지가 생겼다. 2호실에 계시는 60대 초반의 꽃님. 간병을 하는 아내분은 목욕봉사를 오랫동안 하셨다고 한다. 2호실에서 종종 일손을 도와주시는데, 눈이 어두운 맞은편 할아버지 꽃님의 손톱을 깎아 주기도 했다.


시아버지 꽃님은 나의 아버지와도 연세가 비슷해서 처음부터 기억에 남았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거동이 가능하고 비교적 컨디션도 좋았던 꽃님은, 처음엔 봉사자들에게 그리 호의적인 편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의 꽃님들에게서 종종 겪는 일이다. 병실에서 커튼을 계속 쳐놓고 봉사자들의 접근에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전엔 이런 꽃님들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흥칫뿡을 되뇌곤 했었다. 돌이켜보니 미성숙한 내 모습이 참 부끄럽다.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타격감이 없다. 오히려 마음이 아릿해진다.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길 바라게 된다.

가정 호스피스를 연계하며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던 꽃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여느 때처럼 필요한 건 없는지 여쭈며 병실을 방문했는데, 옅은 미소로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을 건네왔다. 교회에 다니셨었다는 말을 듣고, 꽃님의 종교에 맞는 기도문을 골라 정성껏 함께 기도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월요일의 2호실은 화기애애 웃으이 넘쳐났다.

그렇게 몇 주가 더 흘렀고, 그동안 2호 병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아부지~” 하고 너스레를 떨며 병실로 들어간 나는, 팀원들과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한다. 꽃님과 보호자 모두 한 목소리로 기도를 하고 나면 지난 한 주간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나열하기도 하고 아프고 힘든 표정으로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꽃님이 힘들고 지친 날은 평소 좋아하시던 발마사지로 위로를 전한다. 위로는 무언가를 해주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완화 의료를 통해 통증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발을 쓸어내리며 온기를 더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이다.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보수교육을 통해 봉사자로서의 역량을 채워 간다. 의학적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가져오는지 모르겠지만, 림프 순환 발마사지도 열심히 연습했다. 그럼에도 꽃님들의 발을 마사지할 때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느끼곤 한다. '이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스스로 그런 물음을 던지면서도 계속하고 있는 건 꽃님들과 보호자들 덕분인 것 같다. 발마사지를 받고 싶어서 기다리셨다며 반겨주시고 일주일간의 안부를 묻는가 하면, 배워서 직접 해주고 싶다며 옆에서 영상을 찍던 보호자도 있었다.


세 번째 시아버지 꽃님도 발마사지를 무척 좋아하신다. 병실에 들어가면서 "며느리 왔어요~"하고 팀원들이 길을 터주면, 내가 수줍게 다가가서 꽃님과 포옹하며 인사한다. 그리고 요청하신 목욕이나 발마사지를 한 뒤, 서로의 평안한 하루를 바라며 헤어진다.

누군가 mbti를 묻는다면 IIII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넉살 좋게 "아부지~" 하며 다가가는 게 쉽지는 않다.(어쩌면 뼛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색함이 병실 가득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스피스에 입원한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아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나를 며느리라 불러주셨던 그 마음이 고마웠다.

이번주에 집으로 퇴원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거라며 좋아하시던 아버지 꽃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얼굴도 모르는 나의 남편, 자녀분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본다. (내가 속한 팀이 월요일 오전에만 봉사하는 특성상, 직장을 다니며 저녁이나 주말에 오는 다른 가족들은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 간병인은 배우자인 경우가 많고, 자녀들이 돌아가며 병실을 지키거나 때때로 부모가 자녀의 간병을 하는 경우도 있다.)

2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동에 갔을 때, 2호실에 아부지 꽃님이 안 계시더라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만나면 반갑지만 반갑지 않고, 혹여 다시 못 보더라도 선뜻 안부를 물을 수 없는 곳. 먹먹하게 떠올리고 기도하게 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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