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자 이야기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환자들의 상태와 간단한 특이사항들을 전달받고 발마사지 도구를 챙겼다. 지난주에 꽃님들의 컨디션이 다운되어 있어서 요법들을 많이 못했던 병실로 먼저 발걸음 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 좋은 꽃님이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발마사지 하시겠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히 하시겠다며 다리를 번쩍 들어주셨다. 발매트를 깔고 환의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렸다. 이내 발마사지가 시작되었다. 옆에 있는 보호자님을 보고 나서야 마사지 내내 흐뭇하게 웃어 보이던 꽃님이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오늘, 따님이 간병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특징일까. 매주 월요일에 봉사를 가는 봉사자로서 짧게는 한 번, 길게는 몇 달까지도 같은 꽃님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 번, 길게는 몇 달까지만 얼굴을 마주하며 소중한 시간을 채워 갈 수 있다. 그래서 꽃님을 기억하며 그다음 주에 다시 만나는 게 참 고맙다.
가끔은 월요일 아침 발걸음이 무겁기도 하다. ‘제발 오늘, 지난주에 봤던 그 꽃님을 또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되뇌는 마음이 발길을 붙잡는다. 다행인지 양심고백인지, 대부분은 늦어서 급하게 뛰어 가느라 바쁘다…ㅎ
차치하고 다시 오늘의 꽃님을 이야기하자면, 발마사지를 좋아하시지만 늘 말씀도 반응도 적은 70대 꽃님이었다. 지난주에는 더더욱 컨디션이 안 좋았고 꽃님의 목소리조차 듣기 어려웠다. 발마사지 하겠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셨고, 발마사지 내내 두 눈을 감고 계셨었다. 그리고 발마사지가 끝나면 잠깐 눈을 뜨고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밝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이내 다른 요일에 오는 호스피스 봉사자들과 노래를 부르셨던 일화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는 옆에서 부추기는 따님 덕분에 노래를 두 곡이나 불러 주셨다. 늘 조용했던 꽃님의 기분을 끌어올려준 따님이 눈물을 글썽였다.
딸바보 아빠와 그런 아빠를 간병하는 딸을 보면서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우리 아빠는 유일하게 내가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하는 걸 지지해 주신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응원하는 마음이겠지만, 쉬는 날 조금이라도 더 쉬라며 나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시는 엄마의 사랑 가득한 잔소리가 벌써 10년째이다.
딸바보 꽃님의 목소리가 호스피스 병동 전체에 퍼졌다. 울고 넘는 박달재였나… 예전부터 즐겨 부르시던 그 노래만큼은 가사를 잊지 않고 2절까지 완창을 하셨다. 본인이 박달재에 사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으면 꽃님들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박달재가 어땠는지 한참을 이야기해 주시는데, 그 모습을 보던 따님의 표정이 참 좋아 보였다. 알고 보니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꽃님이 한동안 컨디션이 다운되었었는데, 모처럼 옛날 기억을 꺼내시며 또렷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옆에서 다른 꽃님들을 간병하던 간병인과 가족들도 조금씩 모여들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동안 함께 웃었다. 그리고 병동 전체가 행복해지는 마법이 발동되었다.
호스피스란 곳이 그런 곳이다. 감히 기분 좋아지고 행복해지기도 하는 곳. 물론 그러다가도 진통이 몰려오면 고통스러운 억 겹의 시간을 겪기도 하겠지만, 완화의료 전문의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그리고 성직자가 함께 하기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가면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고 잠에 빠져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진통제 맞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하면서 상황에 맞게 잘 조절하면 깨어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채워갈 수 있다.
봉사 후엔 '오후 출근과 수업'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어서 발걸음이 더디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껏 리드미컬했다. 지하철에서는 가사도 잘 모르는 박달재 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