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 월요일.
내 브런치의 첫 번째 글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표지에 적었다. 시작의 이유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말이다.
돋보이고 싶었던 욕망이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기 때문이었을까.
첫 번째 글을 쓰기까지도 역시 시간이 걸렸다.
고민했다.
이 브런치의 글은 ‘나란 사람’이 걸어온 ‘삶’을 큰 줄기로 삼아 그 위에 가지와 꽃과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지와 꽃과 열매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 걸까.
좁고 작으며 깊은 시야를 전문성이라고 포장하는 세계에 살고 있던 내 삶을 넓혀 준 사람을 만났다.
짧았지만, 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사람이 걸어온 삶을 통해 내 삶도 조금씩 확장되었다.
심연과 같은 눈동자를 하고 그 사람이 말했다.
“저는 죽음이 무서워요. 그래서 매 순간,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그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죽음이 무섭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온 시간을 스스로 자조하고 있었던 걸까.
혹은, 바보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고백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이 걸어온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근사한 일이라고.
어쩌면 삶은 의미를 부여받을 때 비로소 특별해지는 게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해 본다.
이 브런치의 글은 ‘나란 사람’이 걸어온 삶을 큰 줄기로 삼아 그 위에 가지와 꽃과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지와 꽃과 열매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 걸까.
아마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들은 비로소 가지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의미를 이제부터 하나씩 붙여 보려 한다.
이 글은 그 첫 번째이다.
하지만 이 글이 훗날 책이 되었을 그때도 첫 페이지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이 글이 시작이거나 끝이거나,
그 어디쯤에는 놓여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이 내게 남긴 한 문장.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나는 이제 그 문장을
내 삶 위에 다시 써 보려 한다.
그리고,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