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루러기와 결핍의 기억
2026년 2월 17일 정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쉬운 기질(Easy temperament)과 외향성・활동성(Surgency/Extraversion)을 타고났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감성적이고 공감도 잘하는 편이다.
내가 자란 환경은 나의 기질을 강화시켰고, 나는 '매우' 외향적(Extraversion)이고, 친화적(Agreeableness)인 성향의 사람이 되었다.
나는 외향적이고 친화적인 나의 성향을 좋아하고 강점으로 생각하지만, 문제는 '매우'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 '매우'가 '결핍'의 증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루러기.
말라세지아 곰팡이균이 습한 환경에서 증식해 생기는 피부 질환이다.
쉽게 말하면, 몸에 피는 곰팡이균으로 피부가 얼룩덜룩해진다.
재발률은 60%로 매우 높다.
나는 어루러기가 있다.
지금은 눈으로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루러기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완치됐다 싶으면 어김없이 재발했기 때문에 '어루러기가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속 편하다.
어루러기가 재발하면 찝찝하지만, 스트레스는 크게 받지 않는다.
익숙해졌다는 표현이 맞겠지.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났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그때의 감정이 어루러기를 통해 재현된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평범보다 조금 덜한 정도랄까.
내 생각으로는 아버지의 연대보증 때문에 생긴 빚 7억의 채권자가 부도났기 때문에 그나마 그 정도의 생활이 가능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정규직으로 일하셨지만, 가계 형편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으셨다.
적어도 이혼하시기 전까지는 확실하다.
어머니는 가사와 양육을 도맡아 하시면서도 틈틈이 그리고 끊임없이 일하셨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고 하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사고를 치셨다. 음주운전, 빚, 주식, 보증 ・・・
우리 집은 볕이 잘 들지 않고, 습기가 많은 1층이었다.
우리 집은 곰팡이들에게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몸에 어루러기가 생겼다.
내 몸의 어루러기를 발견한 누나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비교적 무딘 나도 싫었는데, 예민한 성격의 누나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루러기가 생긴 것은 습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집이 문제였다고 믿고 싶었다. 그게 가장 마음이 편했으니까.
습기가 많으면 곰팡이가 발생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나, 습기가 많은 집에 반드시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집 안에 곰팡이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사람, 특히 아이들 몸에 어루러기가 생기는 경우는 더욱 드물 것이다. 그리고 눈에 띌 정도로 커지는 것을 방치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만약에 우리 집의 형편이 찢어지게 힘들었다면, 그래서 부모님이 언제나 부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그때를 이해하려 애쓰며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안다.
어루러기는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돌보지 못한 시간, 돌봄이 머물지 않았던 공간,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
그 모든 것이 몸 위에 얼룩처럼 번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얼룩을 수십 년 동안 외향성과 웃음으로 덮어 왔다.
‘매우’라는 말 하나 뒤에 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