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 없던 집
2026년 2월 18일 수요일 점심식사 후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눈물은 네 번이다.
너무 어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두꺼비라 말하면서 까슬한 사랑으로 내 얼굴을 비비시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전라남도 출신으로는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리고 연대보증으로 인해 생긴 빚 7억에 직면했을 때.
아버지의 첫 번째, 두 번째의 눈물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세 번째 눈물에는 슬펐다.
네 번째 눈물에는 겁이 났다. 혼란스러웠다.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집 안에서는 큰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누나만 숨었고, 그다음에는 나도 같이 숨었다. 나중에는 어머니도 같이 숨으려고 했지만, 그 좁은 집은 우리 세 명의 숨을 곳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이 무섭고, 불안했다. 싫었다.
승진도 안 돼, 친인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투자한 주식은 쫄딱 망해, 삼촌의 간절한 부탁으로 선 연대보증은 빚 7억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도 패닉이셨겠지. 많이 힘드셨겠지.
도저히 방법을 몰라 술을 드셨겠지.
그래도
그랬으면 안 됐다.
불안에 떨며 숨어 있던 우리 세 명을 굳이 불러내
다 같이 죽자며 손목을 그으려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안 됐다.
잘못한 것도 없는 우리가 울면서 잘못을 빌게 했으면 안 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그날의 네 번째 눈물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