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역 오전 7시

미안함과 서운함 사이

by 강 작가

2026년 3월 2일 오후


"너무 힘들어.

엄마가 예단을 아무것도 안 해 준대!!

네가 뭐가 못나서 예단까지 해 가냐고, 안 해 준대"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예비 신부에게 온 문자 메시지이다.


목적지가 아니었지만
나는 석계역에서 내렸다.


오전 7시.

텅 빈 역사였지만,

눈물로 전광판 숫자가 번져 보였다.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개찰구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이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왜 또 우리 부모님이지.

이혼해서?
재혼가족이라서?'


'그게 이렇게 오래
따라다닐 일인가.'


단짝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받아라. 제발 받아줘..'


"여보세요?

야 인마, 오전 7시야!! 뭔데?"


친구 목소리에

나는 말 대신 울음부터 나왔다.


"XX야. XX야. XX야.

모르겠어. 도저히 모르겠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XX야. XX야. XX야.

예단을 아무것도 못 해준대.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래.

우리 엄마랑 아빠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친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의 흐느낌에 같이 해 줬다.


나는 결국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침묵했다.


나를 위해 참으셨을까.


아니면
이혼과 재혼이 흠이 된 세상에서
말을 잃어버리신 걸까.


왜 우리는
부당한 대우 앞에서
항상 설명부터 해야 했을까.


왜 나는
예비 신부가 감당해야 할 말을
내가 대신 감당해야 했을까.


다 나은 줄 알았던 자리에

다시 얼룩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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