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4일 차
"이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닙니까?"
점심 그 짧은 시간에도 반값 할인이라는 문구는 그저 지나칠 수 없었다.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기어이 오리털이 꽉 채워진 패딩조끼 하나를 겟(GET)했다. 무려 반값의 반값에.
나뿐인가, 주임님, 대리님에 차장님까지 눈이 동그래졌다. 사이즈에 맞는 옷을 받아서는 입어도 보고 거울에 대보기도 하고, 어떤지 물어보며 살까 말까를 고민했다. 대형 쇼핑몰이 이래서 살아남았구나.
나는 소비의 노예다. 해가 뜨면 눈을 뜨고 해가 지면 퇴근을 하며 소정의 근로시간을 채워 매달 통장에 정해진 금액을 받노라면, 매달 그 돈의 일부를 마치 환승역이라도 된 듯 잠시 두었다가 휘발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 일에 일조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
큰돈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런 자잘한 소비들로 내 마음에 꽤나 편해진다는 거다. 가끔은 이래서 내가 돈을 못 모으는데, 왜 이러고 사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제처럼 함께 간 동료들이 내가 그러듯 이렇게나 소비에 열정적이니 나도 모르게 안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편하게 소비했다.”
욜로(YOLO)네 뭐네 하면서 소비를 합리화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이런 말로 덮어내는 일이 결국은 누군가의 소비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언제 콱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좀 내버려 둬’ 이런 거 말고, 그냥 ‘이런 소비가 이렇게 내 마음을 편하고 달래주는 걸 봐봐, 좀 봐줘’ 난 이런 게 더 마음 편하다.
- 내 경우엔 괜히 욜로족이라고 했다간 소비가 더 불편해지는 듯하다.
어제의 소비 덕에 이렇게 난 또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너 인마 돈 벌길 잘했다. ‘다들 돈 쓰려고 돈 버는 거 아니냐고요.’
4일 차의 어제, 소비하는 나에 대한 의아함을 계속 가졌고,
4일 차의 오늘, 소비에 대한 긍정이 무한함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