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3일 차
직장 내에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서 어언 5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길을 천천히 나아가며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 경력직 대리로 입사해 오래된 주임 급의 눈치를 보는 사람, 학생이지만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사람.
그런데 글쎄, 나는 어제 이러한 다양한 부류에 대해 은근슬쩍 선을 나누는 이를 보았다. 물론, 이 선을 나누는 이는 '정규직에, 나름 일 잘한다는 좋은 평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이 뚜렷할 것'이다. 맞다. 정말 딱 이런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인지 선을 나누고 있었다. 왜지?
오늘은 대학 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날이다. 출근 시간도 1시간 미뤄지는 그런 날이다. 비행기도 못 뜨는 그런 날이다. 자식들 수능 보러 가는 길을 마중 가서, 시험 보는 내내 호박엿을 들고 기도하고, 끝날 때 픽업해서 집까지 모셔오는 그런 날이다. 어쩌면 그 희미한 선 때문인지, 그 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수능에 온 국민이 조심하고 설레고 간절하다.
세상에는 많은 '희미한 선'이 존재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 서울과 지방대, 고졸과 대졸, 돌싱과 재혼 등등. 그러나 그 누구도 대놓고 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누구든 삶의 굴곡이 있듯이, 어떤 선이 어떤 이유로 생겼는지 아무도 언급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나는 어제 그런 모습의 내 상사를 보았다.
"어차피 비정규직인데, 뭐하러 친해져"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야?"
아니 어떻게 생각해야 그 사람 앞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내가 다 부끄러워서 사과를 하고 싶어 졌다. 얼마나 상대방을 무시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내가 다 분노해서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내가 다 어이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어제의 그 일이 계속 맴돈다.
작은 사회에서 큰 사람이라고 믿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않아 다행이다.
누군가와의 희미한 선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을 눈치도 없이 해내지 못해서 다행이다.
사람 누구든 다 의미가 있는 법인데, 단지 희미한 선을 희미한 선으로 두지 않고 드러낸다는 것은 오히려 드러내버린 사람을 한심하고 불쌍하고 바보 같이 만드는 일이구나, 느꼈다.
3일 차의 어제, 희미한 선이 선명했고, 3일 차의 오늘, 희미한 선을 그저 더 희미하게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