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2일 차

by 이민호

12월에 준비되어야 할 것이 많다. 지금 하는 공부의 마지노선을 뜻하는 시험이라든지, 한 해의 마무리를 뜻하는 송년회라든지, 조금 늦은 어머니의 생신이라든지. 내게 12월은 꽤, 아니 정말 바쁜 달이다.


12월 1일이 된 어제는 나에게 뭐랄까, 이것 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코 끝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그래도 11월 말부터 이렇게 다가올 많은 일에 대해 슬슬 체감을 하고 있던 터인지, 미리 준비를 해왔었다. 하지만, 2주 전쯤부터 시작된 코로나 19는 이런 내 의지나 동기부여를 무너뜨린다.


이런 걸 기초 체력이라고 하나. 열심히 달려오다 무언가 절망적인 상황이 덜컥 오거든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것이 나에게는 이따금씩 있다. 당장 이번 주 금요일에 잡혀있던 열 명의 송년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동안의 '어디로 가야 하나, 뭘 먹어야 하나, 코로나로부터 안전한가'하는 생각은 적어도 내가 그 열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였다. 가정 자체가 무너져버린 지금 이 상황에서 어제의 나는 무척 맥이 빠졌나 보다.


- 할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말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나는 또 피하고 싶은 때마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물론 최근 피곤함을 해소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고 있긴 했다만, 이렇게나 쓸모없는 인간처럼 쏟아지는 잠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헤롱 대고 있었다. 아 이 바닥에 닿을 만한 체력.

-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멍 때리다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 어머니와 큼직한 디스플레이 앞 흘러나오는 드라마를 아무런 생각 없이 즐겼다. 아 너무 재밌었다.

- 드라마가 끝나니 11시였다. 왜 이러고 있는지, 오늘 하루를 왜 또 이렇게 보냈는지 원. 문자도 카톡도 메일도 이렇게나 쌓여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아 이 바닥에 닿을 만한 체력.

-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다. 어머니 생신 선물을 뭘 사드리지. 역시 소비를 할 때는 체력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이렇게 소비를 먼저 해내고 없애버렸어야 했나, 하면서 부족한 체력에도 눈을 부릅뜨고 이것저것 수없이도 많은 상품들을 비교하고 따져보기 시작한다. 아 너무 재밌었다.


어제로만 보아도 이런 결론이 난다.

생산적인 일들을 해내려면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

나에게는 어떤 원동력이 작용했기에 그동안 많은 것들을 해온 것인가.

나를 버티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체력이구나.

언젠간 운동을 하리라 했던, 죽어라 뛰어 보겠다던, 홈트라도 빠뜨리지 않겠다던,

이 기한 없는 약속에 기한을 두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 이 바닥에 닿을 만한 체력.


2일 차의 어제, 소모할 체력도 부족했던 날

2일 차의 오늘, 체력을 키우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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