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17일 차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무념'은 다음과 같다.
무념 (無念, 명사)
1. 어떠한 일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없음.
2. (불교)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없는 무아의 경지에 이른 상태.
아무런 사심이 없는 경지, 그렇기에 아무런 잡감정도 잡생각도 없는 상태, 그런 게 무념이다.
20살 이후로 약 10년 가까이 내가 가져온 수많은 욕심들이 무의미함을 느꼈다. 그리고 최근 나는 행복감이라는 것을 느끼는 데에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난 무념에 가깝다.
태어나고 20년간 나는 늘 잘해왔다. 어머니의 따뜻한 울타리와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아래, 늘 가족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왔고, 그리고 그 기대가 나에겐 삶의 원동력이자 이유였던 듯하다. 스무 살 이후, 그런 기대들이 계속되어 왔지만, 충족시키지 못하는 일이 숱하게 많았고 이에 나는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없이 많은 욕심을 부려왔다.
다행히도, 재작년쯤부터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에 무너지고 무언가에게 무력감을 느껴왔는데, 그 무게가 상당해서 결국 우리가 왜 사회적 동물인지, 그리고 왜 소확행인지, 그리고 왜 무념무상이 중요한지를 스스로 깨우치기 시작한 듯하다.
어제는 이런 무념에 대한 알 수 없는 만족감을 경험했다. (무념이 아무 감정과 생각이 없는 것인데, 무념 때문에 감정과 생각이 요동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느낌이긴 하다.) 어제의 무념에서 비롯된 행동들, 그것으로부터 오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또다시 무념을 품는 과정에는 '어머니'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고 느낀다.
- 퇴근 후 어머니와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만나 집을 함께 들어간 것
- 집을 들어가는 길에, '아 오늘 목요일이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야시장에 열린 것을 본 일
- 야시장에서 어머니와 피자를 포장해 귀가한 일
- '가끔은 쌀 말고 밀가루를 먹어줘야지' 하면서 건강 생각 없이 한 끼를 때워버린 일
- 날씨가 추워져서 침대 전기장판을 깔자며 별생각 없이 현관 앞에서 장판 먼지를 툴툴 털어낸 일
- 얼마 전에 어머니와 만든 호박식혜를 한 컵 들고 전기장판 위에서 웹툰을 꺼내본 일
어제의 내가 어머니와 함께한 저녁 시간은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선 별 것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별 것 없는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별 것 있는 일상일 수 있다.
돈이든, 외모든, 그 어떤 모양의 번뇌들로 머릿속을 꽉꽉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지는 그 방식대로 '무념'으로 살아가는 것도, 별 것 있는 일상일 수 있다.
그 흔한 일상생활을 세상 사람들 흔히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별 것 있는 일상일 수 있다.
그동안 살아온 긴 시간에 익숙해, 늘 무념으로 일상의 공간을 떠다니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무념의 가치가 꽤나 만족스럽다는 것을 알았으니, 가끔은 무념으로 일상의 시간을 채우리라.
17일 차의 어제, 아무것도 안 했는데, 17일 차의 오늘, 별 걸 다했다고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