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19일 차

by 이민호

어제 어머니는 화장실 하수구 입구에 끼인 머리카락을 치우다 손이 베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어머니도 놀라고 나도 놀라서, 지혈을 할 무엇도 밴드도 찾아올 생각을 못했다. 무엇이든 챙겨줘야 하는데, 사고 회로가 멈춰버린 듯 어버버 하다가 어머니에게 한 소리 들었다.

"내가 다쳤는데, 왜 네가 다친거마냥 정신을 못 차리드냐"


저녁에 우리는 전날 사다 놓은 돼지 등뼈로 묵은지 감자탕을 해 먹기로 했었다. 등뼈를 오랜 시간 고는 일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뼈가 꽤 신선했는지, 고는 뼈 향기가 내 코를 근질근질 건드렸다. 저녁에 먹을 감자탕에 벌써 침이 고였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의 손가락이 다치신 거다. 힘이 조금만 들어가도 아프다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감자탕 조리를 맡기신 거다. 평소 밥상을 차리는 일에 '요즘 남자들은 이런 것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라며 늘 함께 하라고 해오신 어머니 덕에 이것저것 음식을 차리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워오긴 했었다. 근데 감자탕이라는 큰 벽이 내 앞에 내려앉았다.

"아니 감자탕을 내가 어떻게 해"


어머니는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려는 내가 나름 답답하셨나 보다. 어슷 썰기는 무엇이며 한 큰 술은 무엇이며 맛을 보고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해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인가. 아 쉽지 않네.

그래도 말했듯이 평소에 밥상을 차리는 일에 동조해온 덕에, 손발은 맞는 편이었다. 이것이 필요할 쯤에 이것을 하고, 저것이 필요할 쯤에 저것을 했다. 밥 먹기 전 미리 정리하는 식전 설거지까지 완벽했다.


"음 생각보다 맛있는데."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뱉은 말이었다. 어제 나는 괜스레 나 자신이 해본 감자탕에 자신이 없었다. 이거 넣고 저거 넣고, 넣는다고는 넣는데, 글쎄 괜찮은 건가. 맛은 보는데 뭔가 2퍼센트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좀 더 끓이면 괜찮겠지' 하고 3~5분 정도 더 끓이고 불을 줄였다.

어머니와의 감자탕 저녁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어제의 나는 이제 감자탕도 맛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흡족해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맛있게 드시더라. 밥 한 그릇도 뚝딱 하고 국물에 밥까지 추가로 말아서 드셨더라.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 감자탕 어땠냐고 어머니께 여쭈었다.

맛있었다는 말과 함께, "역시 MSG는 배신하지 않아"라고 하셨다.

내가 딴 짓을 하는 사이에, 어머니는 MSG를 넣으셨다.

아이고. 다X다.

아이고. 내 실력은 필요가 없구나. 다X다면 되는구나.


19일 차의 어제, 감자탕 따위도 마법의 가루면 된다며, 19일 차의 오늘, 걱정스러운 식사 준비 시간은 앞으로 없어도 되겠다는 다행스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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