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43일 차

by 이민호

계약 비슷한 것들을 하면 약관이 나온다. 온라인 사이트나 앱 회원가입만 해도 우리에게 약관을 동의해달라며 수많은 체크를 요구한다. 나는 그동안 그 수많은 약관을 띄엄띄엄 굵게 표시된 것만 훑고 내용을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어쩌면 이것은 너와 나의 약속 같은 것인데 왜 다 안다고 착각했는가.


어제 나는 우리 회사 앱 개발과 관련하여 약관에 대한 업무만 하루 종일 했다. 여기 약관 저기 약관 읽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런 하루였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상대와 약속하고 있었다.

“아니, 이 사이트가 이런 것들을 다 해주고 있다고? 정말로?”


회사 동료와 퇴근길에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동료는 나보다 더했다. 그냥 읽지도 않고 동의를 한단다. 훑어보는 내가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내가 동의를 하는데 뭘 알고는 동의해야 하지 않냐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려고 할 때도 이랬던가. 어느 정도 대강은 알아야 무언가를 하고자 했는가. 특히 사람에게 그래 왔는가.


사람 관계에도 약관이 있다면 지킬 것들을 잘 지켜낼까. 나는 그저 그 관계의 정리를 대강 읽고 지나갈까. 상대는 나와의 약관을 훑지도 않고 그저 지나갈까. 그저 서로가 한 약속을 제대로 해낸 지 그렇지 아닌지도 구별하지 못한 채 지나갈까. 약관이 있다면 잘 지켜낼까.


43일 차의 어제, 이용약관에 치여 눈이 빠질 지경이 이르니, 43일 차의 오늘은 어떤 형태의 약관이든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 관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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