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49일 차
나는 시국을 따르는 편이다. 모두의 눈초리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에, 그 시국의 이유를 더 크게 만드는 데에 손을 얹고 싶지 않다. 어찌 보면 집단 지성에 손을 얹고 싶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에 손이 얹혀지는 형국이긴 하네. 아무튼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잘 구분하는 편이다.
요즘은 눈살 찌푸리는 일들이 많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별 나 같은 사람도 그렇게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나이기에 타인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괜히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물론 어제의 이야기다.
결과적으로는 밉지는 않다. 팍 그냥 괜히 기분이 꽁했었다. 이건 좀 아닌 듯싶어서, 이 시국에 나는 괜찮지 않은데 왜 우리를 괜찮다고 판단해서 묶었는지, 마치 괜찮지 않았던 것처럼 마무리를 하는지, 시국 생각 없이 그저 진행하고자 했던 느낌이 팍팍 나는데 말이다.
“당연히 안 되지”
하던 그 말은 보이기 식이었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밉지는 않다. 적어도 눈치는 봐준 거니까. 그냥 잠깐 불편했을 뿐이다. 이 일이 어떻게 되어버릴지 알 수 없다. 시국을 따르는 일이 익숙한 나에게는 그것을 피해 가는 일이 불편할 뿐이다. 이 일을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동조할지 알 수 없다.
그저 말도 안 되는 말로 이 시국의 대처를 무마 해버리지만 않았으면 한다. 마치 정치인처럼.
49일 차의 어제, 꽤나 불편한 마음으로 내가 그를 미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49일 차의 오늘은, 그가 아니라 그를 아끼는 마음에 그를 동조하지 않는 나 자신이 미웠던 것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