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62일 차

by 이민호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출사를 갔었다. 27장의 사진만이 허락되었지만, 하루 반나절을 돌아다녔는데도 그 사진을 모두 찍지 못했던 거다. 유난히 영감이 없었던 날이었다. 같이 출사를 나간 친구와 웃고 떠들고 맛있는 밥이나 먹은 게 더 기억에 남았다.


어제는 지난 출사에서 완성하지 못한 필름을 소진했다. 10장 이내의 필름이었는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쉽지가 않았다. 혼자 생각으로는 '아 나 왜 이렇게 됐지'하는 한심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동안 너무 사진을 쉬었나, 그동안 너무 사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내 사진첩에 그럴싸한 사진들이 최근에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진정 사랑해오던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사진이다. 누군가에게 찍히는 일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찍는 일, 누군가가 아닐지라도 무언가를 찍는 일, 그리고 언젠가 내 나이 마흔 즈음되었을 때, 그때는 내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벽에 걸어보겠노라 했던 그 마음, 그 모든 것을 사랑해왔다. 요즘은 내가 사랑했던 사진에 대한 관심을 다소 소홀했던 모양이다.


사진뿐은 아닐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지쳐서 진정 내가 아끼고 원하고 마음에 품어왔던 것들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것이 물건이든, 취미든, 활동이든, 당신이든.


62일 차의 어제, 사진가의 사진 실력이 녹슬었다는 것은 그에 대해 소원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했고, 62일 차의 오늘, 필름과 더불어 내가 소원했던 것들을 돌아보겠노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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