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중에 무려 1년 3개월을 지하철에서 보냈다니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째.
20대의 13%를 지하철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스무 살부터 10년 동안 매일 왕복 3시간 서울로 통학, 통근을 잘해온 나였기에, 가장 먼저 엄마를 설득해야 했다. 엄마도 나의 통근 시간이 길다는 것은 인정하셨지만 그 돈 아껴서 저금을 더 하는 게 어떻겠냐고 늘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때론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최소한 설명은 해줘야 할 때가 있다. 기존의 것을 벗어난 새로운 일이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남들이 흔히 하지 않는 일일수록 더 그렇다.
가장 좋은 무기는 뭐니 뭐니 해도 학생 때는 "공부" 직장인일 때는 "일"이다. 적절한 타이밍으로 최근에 이직을 해서 하는 일이 바뀌었는데, 왕복 세 시간 넘는 통근 시간을 아껴 회사 일에 필요한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다. 딸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데 말릴 수 있는 부모는 없을 테니깐!
사실 자취를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통근 시간이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난 지하철 타는 걸 은근히 즐기는 사람이다. 지하철에 타서 사람 구경하는 게 재밌고, 아침잠에서 깬 다음 충분히 정신을 깨고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좋고, 무엇보다도 이어폰을 끼는 순간부터 오롯이 내게만 집중하도록 확보된 시간이 좋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지하철에서 보낸 시간을 "일 수"로 환산해보니 얘기가 좀 달라졌다. 대학생 때부터 부천에 살아온 나는 지난 10년 동안 하루 평균 3~3.5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심지어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유학했을 때도 하루 평균 2~3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이 시간들을 다 더해보니, 1년이면 약 1,000시간 (=45.5일) 10년이면 10,000시간 (455일) 무려 10년 중 1년 3개월을 지하철에서 보낸 것이었다.
"1년 3개월??? 이거 실화야?"
20대엔 잘 몰랐는데 서른이 넘어가면서 시간이 가장 소중하단 걸 실감한다. 무언갈 하고는 싶은데 돈이 없다 라는 생각보단,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래서 문득 지하철에서 보내는 하루 3시간이 아까워졌다. 저금도 중요하지만 지금 흐르고 있는 내 시간도 너무나 소중하기에-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문득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근데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회사 근처로 이사를 와서 하루 3시간 걸리던 통근 시간을 확 줄인다면!
그래서 난 서울살이를 결심한 지 6일 만에 바로 서울로 이사를 왔다.
"OMG"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사를 오자마자 회사가 재택을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출퇴근 시간을 벌어보려고 했던 애초의 목적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언제 재택이 끝날 지 모르니 일단 값비싼 "나만의" 서울 집에서 지내고 있다.
사실 서울 살이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내 로망 중 하나였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서울에서 오래 산 내 친구 다빈인 "서울 사는 게 뭐 별건가"라고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강원도, 대전, 인천, 부천, 광주, 의정부 등 전국 각지를 누비며 산 나였다. 그럼에도 끝내 닿지 않았던 서울과의 인연을 서른 하나에 드디어 #내돈내산 해서 만들었다!
예전엔 택시비 3만원이 아까워 신데렐라처럼 웬만하면 막차 시간에 맞춰 다녔었는데, (물론 연애할 때는 택시비고 뭐고 아까울 게 없었지만)이젠 서울 어디를 가도 웬만하면 10~30분 내로 집에 도착하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코로나만 아니면 더 돌아다닐 수 있는데 억장이 무너질 따름 :(
서울 한 복판에 방을 얻었다 보니 방세와 관리비가 월 120만 원을 육박한다. 주위에선 "이얼~돈 잘 버나 봐?" 라며 부러워한다.
"모르는 소리! 나 돈 많아서 자취하는 거 아니야..."
자금 상황으로 언제라도 끝나버릴 수도 있는 하루살이 같은 서울살이지만, 그래도 혼자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이 시간에 오롯이 집중하며 즐기고 싶다.
나는 하루에 4만 원짜리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