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참 별거네요.
서울에서 산 지도 어느덧 두 달 반이 되어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6년이나 살았던 집을 나오던 날, 서울에서 서너 달만 살아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엄마와 약속했었지. 내가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하면 이미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내가 장담하는데, 너 한 번 나오면 절대 다시 못 들어가."라고 말했었고, 나는 "그러기엔 월세가 너무 비싸서.. 난 딱 세 달만 경험해보고 들어올 거야"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단기 계약이고 어느덧 계약 기간이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 들어 엄마는 부쩍 "계약 끝나면 집에 들어올 거지?"라는 질문을 많이 하신다. 막내딸이 서울살이를 해보겠답시고 나가서 영영 엄마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닌 지 내심 섭섭하고 걱정되시나 보다.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오는 친언니와 형부 역시 "이제 서울살이 얼마 안 남았네? 계속 여기서 살 거야?"라며 향후 거취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천천히 가길 바랐는데, 역시 시간이란 건 얄짤도 예외도 없다.
지난 세 달 동안 서울에 살면서 느낀 경험을 공유해보자면, 내게 서울살이는 1개의 단점과 999개의 장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개의 단점은 주거비가 비싸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안타깝게도 '돈'이다. 내가 가진 모든 재능과 열정을 발휘해 서울 홍보대사를 할 테니 서울시에서 월세를 감면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거 나도 알아. 내가 BTS도 아니고...ㅠㅠ (희망사항입니다.)
(서론이 무척이나 길었네요.) 오늘은 서울살이 중간 점검 차원에서 서울에 살면서 내게 생긴 변화 3가지를 끄적여보려고 한다.
1. 성격이 여유로워졌다.
하루 3시간 30분에 육박하던 출퇴근 시간의 압박이 줄어드니 성격이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가볍게 러닝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한다. 출근에 대한 부담감은 zero다. 여유가 있는 날엔 걸어가면 되고, 조금 촉박하다 싶으면 지하철을 타고, 정말 늦었다 싶어서 택시를 타도 5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좋은 컨디션 덕에 아침부터 과한 하이텐션을 뿜 뿜 한다는 부작용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쩌겠는가. 졸린 눈 비비며 시작하는 축 처진 아침보단 백번 낫다. 출퇴근의 변화가 사람의 성격까지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문득 친구가 몇 달 전 부천에서 통근하는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부천에서 출퇴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다니, 너 진짜 성격 좋다." 지금 와서 재해석해보니 친구의 속마음은 이러했다. "그렇게 고된 출퇴근을 겪고도 웃으면서 회사를 다녀? 보통이었으면 너의 인성은 이미 오래전에 망가졌어야 해." 그래 서울살이가 내 성격을 살렸다.
2. 택시, 대중교통 대신 걷기 시작했다.
서울에 온 뒤로 택시뿐 아니라 지하철 이용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애초에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돌아다닌 적도 없긴 하지만,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다 보니 생긴 변화이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줄일 수 있는 소비는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중 하나가 교통비이다. 그래서 회사나 2~3km 내의 약속 장소는 걸어 다니고 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열심히 30분을 걸어오다 집 앞에서 충동적으로 로또를 산 적이 있다. '당첨되면 서울에 집이나 사야지'라고 부푼 희망을 안고. 역시 욕심이 과하면 안 된다. 결과는 꽝! 1,500원을 아끼려고 걸어온 사람이 로또로 만원을 홀라당 날렸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너무 웃겼다. (앞 뒤가 참 안 맞는 행동인 거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면 요즘 많이 걷는다는 거! 집 앞에 선정릉이 있다 보니 이틀에 한 번 꼴로는 선정릉을 끼고 걷고 있다. 두 바퀴만 돌아도 거의 4km다 보니 일주일에 세네 번만 돌아도 이미 10km를 훌쩍 넘긴다. 걷는 시간이 길어지니 건강도 챙기고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3.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에 살면서 여유 시간이 확보되고,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간단하게는 매일 아침 스트레칭부터 브런치 글쓰기, 나만의 브랜드를 기획해보는 일 등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땐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음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정말 혼자 있는 공간의 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 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내가 원치 않을 때 대청소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티브이를 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일 때도 있고, 새벽 늦게까지 통화를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그런 경우들. 하지만 혼자 사는 순간부터 내 공간은 오롯이 나의 단독 소유이다. 때문에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직접 계획하고 또 책임 역시 내가 진다. 확실히 나란 사람은 자유가 주어질수록 훨씬 높은 창의력과 생산성을 발휘하는 것 같다.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벌려 놓은 많은 일들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들 중 부디 하나라도 내가 서울살이를 지속하게 되는 명분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 달 반 뒤에도 지금 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계속 지낼 수 있을까? 내가 서울살이를 하면서 얻는 것들, 그리고 지출하는 것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객관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명확한 값으로 환산할 수 있는 월세에 비해 서울살이의 장점은 시간이나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게는 (어떤 명분이든 간에)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서울살이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미션이 남아있다. 삶의 질 향상, 성장이냐 아니면 절약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마 올해 내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 같다! 두구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