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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미삐약이 Jun 08. 2023

요즘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하는 일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이렇게 살아요

호기롭게 교직의 쓴 맛에 대해 글을 남겼지만, 남기면 남길수록 내 현실에 대한 쓴맛이 밀려드는 것 같아 쉬는 날에도 고통스러웠다. 여러 방면에서의 갖은 노력으로 겨우 잔잔하게 진정시켜둔 삶에 괜한 풍랑이 인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왜 사서 이렇게 온라인상에서도 총대를 매나 싶은 현타가 밀려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작금의 학교 현실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그대로다. 


우리가 너무 의욕적이고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에 이런 감정들과 허무감을 느끼는 걸까? 학교는 더이상 교육 기관이 아니라 보육 기관인걸까? 우리는 왜 이렇게 존중받지 못하고 급여적으로도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할까? 우리는 이대로 넘쳐나는 민원에 이렇게 소극적으로만 대응하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는 것인가?  


물론, 예쁜 학생들과 점잖으신 학부모님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우리를 좀먹게 하고, 우리의 희망을 앗아가고, 우리를 지치게 하고, 우리의 의욕을 몽땅 빼앗아버리는 건 소수의 악성 학부모들이다. 민원인과 1년 내내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 이게 참 사람을 지치게 한다. 물론 악성 학부모들 밑에는 어떤 아가들이 나올까요..? 옛 이야기와 속담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그런 이야기.




수업 중에 으악~! 익룡 뺨칠 정도로 고성을 지르며 "선생님! 저 소리 좀 지르고싶은데 잠깐 소리 질러도 돼요?"질문하고 소리 지르는 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양반이다. 이 정도는 뭐. 그냥 애교다. 저 예의 바른(!) 질문은 우리가 관계가 좀 형성됐을 때, 소위 말하는 라포 형성이 되었을 때 내게 저렇게 사뿐하게 질문을 했던 거다. 내가 안된다고 해도 그래도 하고 싶다며 창문 밖에다 대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던 저 학생이 문득 기억난다. 그 전에는 그냥 뭐 시도 때도없이 본인 원할 때 으아아아악~~~~~~~~~!!! 하고 온 교실을 가로지르며 소리를 있는 힘껏 지르며 돌아다녔던 학생이 기억난다.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슨 제지를 할 수 있나? "그러면 안되지, 조용히 하고 얼른 앉아, 앉아." 그저 아름답고 좋은 말로밖엔 할 도리가 없다.


위에 쓴 익룡 학생은 일반 교과 선생님들의 통제가 정말 어려웠고 그나마 담임선생님의 말만 들었던 아이다. 저 학생이 한 번 저렇게 핀트가 나가면 교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온갖 떼를 다 쓰고 수업을 방해하는데, 우리도 정말 그 담임선생님께 너무나도 죄송하지만 급히 SOS를 쳐서 제발 데려가달라고 하거나 아이에게 "**아, 담임선생님께 가봐. 맛있는 거 주실거야." 하면서 돌려보낼 때가 많았다. 이 기회를 빌어 그 선생님께 다시한번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면 걔는 한참이 지나서 양 손 한가득 우유와 과자를 들고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 쌤이 이거 줬어요!!"하면서 교실로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걔를 학교 밖에서 마주쳤을 때는 조용하기 짝이 없는 정상인이었는데... 관심이 부족해서 그랬던걸까, 참 사람 여럿 환장하게 만들었다. 그 수업이 끝나고 그 학생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가면 선생님의 얼굴은 너무나 지쳐서 영혼이 늘 탈출한 모습이였다. 그럴만도 하다. 온갖 달램을 통해서 겨우 애를 달래야 아이도 가고 본인도 수업을 하거나 업무를 볼 수 있으니.


저 친구는 양반이고, 조별 수행평가로 아이들이 큰 종이를 꾸며서 발표를 해야하던 적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은 해맑게 소리를 치면서 조별 발표로 준비했던 포스터를 부욱, 경쾌하게도 찢어버렸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너는 다 감점이야!" 소리를 치고 감점을 하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그런 학생들은 종종 있다. 항상 있다. 담임들은 정말로 조심스럽게 에둘러 치료를 권하는데도 문제는 그런 학생들의 부모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이 포인트다. "선생님! 지금 우리 애가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저희 애는 문제 없어요! 선생님 감히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에욧!!"이라는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오고 1년 내내 시도때도없이, 정말로 밤낮 휴일을 가리지 않고 시달리기 때문에 이제는 문제 아이가 있어도 흐린눈을 하고 1년 그냥 내가 죽도록 고생하고 얼른 올려보내자는 마인드만 강해진다. 물론 그러다가 내가 병을 얻게 되만...


근데 말이다. 솔직히 학생이 힘든 것은 어느 정도 괜찮다. 그 이후의 부모님의 개입과 고집(?)이 우리를 돌게 만드는 거지.. 저 정도는 그냥 괜찮다. 저 이상인 정말 힘든 학생들은 정말 우리의 에너지 흡혈귀라고 해야할까... 제발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 학생의 엄마, 아빠가 아니다. 서른 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을 다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기 아이만 그렇게 봐달라고 과한 요구들을 하는 것만큼 이기적인 게 없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더 든다. 


담임이니까 당연히 해야지! 라고 하는 사람들에겐 묻고 싶다. 우리가 수업 안하고 애들만 쳐다보고 있을 수 있냐고. 우리는 수업 준비 안하고 툭 치면 그냥 좌르르륵 수업할 내용이 튀어나오는지. 수업 자료 제작 없이 말로만 대충 수업이 가능한지. 수업 못하면 수업 못하는 교사라고 비난이 쏟아지고, 그 비난보다도 그런 질 낮은 수업은 우리 자신이 못 견뎌하는 걸 아는지. 우리가 필요한 행정 업무는 대체 그럼 언제 하는지. 


급식실에 밥 시간 맞춰서 교실에 따로 남는 아이들 없이 모두 다 내려가는지, 우리 반 줄에 잘 서서 기다리는지, 어디 무단 외출 하면서 새진 않았는지, 다른 반 줄에 몰래 숨어 들어간다거나 새치기를 하진 않는지 매일 그렇게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게 쫓겨가며 점심시간을 전투하듯 보내는 걸 아는지. 버티다 못해 급식을 신청하지 않는 선생님들도 늘어나고, 급식실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니 숨을 쉴 것 같다고 말하는 선생님들이 어찌나 많던지.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치고 싸우는 애들은 온 사력을 다해 더 흥분하지 않도록 진정시키고, 내 간식을 하나씩 주섬주섬 한 무더기 꺼내다 주거나 학교 근처 편의점으로 몰래 데리고 나가간식을 고르게 하며 달래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지. 그러다 우리는 식사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아는지. 애들 얘기 다 듣고 나면 사건 해결을 위해 각 학부모들이랑 연락을 얼마나 하며 좋은 말만 골라가며 애쓰는 걸 과연 아는지.




교직 생활 초반에는 내가 배웠던대로, 학부모님께 온 사력을 다해 공감을 해드렸다. 한 번 통화를 하면 내게 온갖 삶의 하소연을 하던 어머님들이 어찌나 많으시던지 통화 한번에 온갖 얘기를 다 하시며 40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 돌아보면 말을 못 끊었던 탓인가 싶다. "@@쌤, 너무 그렇게 하면 쌤이 힘들어."라는 말을 수없이 듣던 나의 햇햇햇 햇병아리 시절. 하지만 나는 더이상 학부모님께 공감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물론 사랑하는 내 학생들에게는 무한한 공감과 따스한 지지를 여전히 굳건히, 넘치도록 흘려보내고 있다. 


학부모님께 공감의 말을 건네지 않는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괜한 공감의 말로 인해 의견이 갈리는 경우 "@@선생님도 동의하셨어요,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등 나의 공감을 본인의 주장을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몇 차례 겪고 나서야 나는 공감의 말을 멈추게 되었다. 나도 마음이 많이 불편하지만.. 그런데 어쩌랴 나도 살아야하니까. 사건 사고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한 건이라도 발생해서 그 민원의 화살이 돌아올 때에는 진심으로 건네고 싶은 공감의 말을 억지로 삼키고 또 삼키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 때가 참 많다.



   

이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돌던 짤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고객인지 민원인인지 아무튼 어떤 사람이 전화로 막 뭐라고 하니까 한참 대응하더니 전화 끊고 나서 커피 한잔 쏴악 하고 "치와완줄"이라는 네 글자로 상황을 정리하고 본인 할 일에 매진했다는 그런 전설적인 이야기. 



나도 멘탈이 저랬으면 좋겠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 교사들, 그리고 과도기를 겪어가는 교사들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일이 터졌을 때 개입을 해도 대처가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무한 민원을 넣고 분이 풀릴 때까지 그치지 않는 이 시기에 우리가 발 디딜 곳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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