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백수, 텅장과 함께 철학을 배우다.
나는 한동안 내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경력은 단절됐고,
박사학위는 되려 나를 가로막았고,
교수라는 타이틀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디에도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고,
이력서에서조차 나를 감춰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학에서 교수로 일한 3년,
나는 열정 하나로 매일을 버텼다.
평일엔 수업, 강의안, 학생상담, 연구, 평가.
주말도 수업...
학과장이 되자,
학교 행정과 회의, 보고서, 인사까지 모두 나의 일이 됐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불안이 밀려왔다.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았고,
아침엔 눈이 퉁퉁 부은 채 출근했다.
몸은 부었고, 마음은 말라갔다.
감당해야 할 책임은 많은데,
나 자신은 점점 사라지는 기분.
모든 일이 끝나고
나는 집에 앉아,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고,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멈춤’은 나를 다시 살렸다.
처음에는 불안했고,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비워졌고,
지금은… 정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통장은 텅장이지만,
마음은 부자인 행복한 백수.
그래도 나는 매일 아침 다시 일어난다.
논문을 열고,
계획서를 쓰고,
내가 좋아했던 수업을 떠올리며 교육을 생각한다.
누가 날 써주지 않아도,
나는 교육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지 않았다.
전문대 졸업부터 시작해,
유치원 교사, 발달센터 치료사,
학사·석사·박사, 대학 교수…
그리고 다시
이력서에 ‘지원자’라 적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나는 쉬지 않았다.
늘 배우고, 질문하고, 움직였고
어떻게든 교육을 붙잡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은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건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혹시 나처럼
중간에 끊긴 경력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늦지 않았다고.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교육자라고.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길이 되기를 바란다.
> 다음 이야기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을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을까?
EP.11 :) 감정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같이 건너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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