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 내가 싸움닭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왜 교사의 목소리는 사건이 되어야 들리는가?

by 듀비이즘



보육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몇 년 전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무한한 감정노동, 하루 열 시간 넘는 책임, 그리고 돌아오는 건
"집에서 애나 보지 왜 맡겼냐"는 말뿐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무너졌고,
그 죽음은 늘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그러다 서이초등학교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교사의 죽음이 사회를 흔들었다.
교권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고, 제도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화는 필요했고, 다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가슴 한켠이 무거웠다.
왜 어떤 교사의 죽음은 이슈가 되고,
어떤 교사의 죽음은 그렇게 묻혀야 했을까.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몇 해 전, 내 인생에도 절체절명의 일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이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손해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그 책임을 지면 우리는 모든 걸 잃게 될 상황이었다.

나는 직접 서류를 챙기고, 상담을 받고, 그들의 책임을 증명하기 위해 달렸다.
두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 과정을 통해 느꼈다.
작은 사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무기력은 사라진다.


그날 이후 나는 교사들의 침묵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배워왔다.
“애들 앞에서 프로답게, 묵묵히 버텨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감정노동자에게 너무 가혹한 기준이다.
돌봄은 관계이고, 감정이고,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교사는 로봇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버티고 있다.
지쳐도 말 못 하고, 무너져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구조 속에서.

나는 말하고 싶다.
더 이상 교사의 목소리는 사건이 되어야만 들리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군가의 용기는,
다음 사람의 생존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이제 우리가 말할 차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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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시작했지만, 시스템은 늘 불안정했습니다.
EP.4 교수였지만, 나는 여전히 ‘비정규 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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