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슬프다 .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공식적 시작은
1909년 함경북도 나진에 설립된 나남유치원입니다.
일본 정토종 포교사가 설립한 이 유치원은
일본계 및 혼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종교·언어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놀이’는 일본어 교육의 도구였고,
교사는 ‘선생님’이 아니라 ‘보모’로 불렸습니다.
이 유치원은 식민지 통치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졌고,
그 시초부터 영유아교육은 교육보다 돌봄, 돌봄보다 통제의 의미로 시작됐습니다.
1914년 1월, 서울 정동 손탁호텔.
이화학당의 미국인 선교사 샬럿 브라운리 여사가
한국 어린이 16명을 대상으로 ‘이화유치원’을 개원합니다.
이화유치원은 다릅니다.
교육의 대상이 ‘일본 아이’가 아니라 ‘한국 아이’
목적이 순종 훈련이 아니라 자율과 존엄의 성장
교사는 외부 인력이 아니라,
이화학당이 양성한 한국 여성 교사들..
이화유치원은 ‘돌봄 기관’이 아니라,
여성 교육과 민족 자각의 씨앗이 뿌려진 공간이었습니다.
1915년에는 국내 최초의 유치원 교사 양성과정인 ‘유치원 사범과’도 개설되며,
이화는 우리 손으로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영유아교육의 본보기가 됩니다.
광복 이후에도 유아교육은 하나의 체계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유치원은 교육부 소관, 중산층 중심의 사립 기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 저소득층 중심의 복지 기관
"아이를 키운다"가 아니라, "아이를 맡긴다"는 행정의 언어가
영유아교육을 둘로 나누고, 교사도, 아이도 분리시켰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는 오랫동안 ‘전문가’가 아닌 ‘인력’으로 간주됩니다.
자격 기준은 짧고, 근무 시간은 길고, 사회적 인식은 낮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가르치고, 안고, 청소하고, 설거지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보육 도우미’ 같아요.”
한편 정책 안에서의 아이는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복지의 수혜자’로 머뭅니다.
저소득층 중심의 지원 구조
긴급보육·양육수당 중심 정책
‘모든 아이를 위한 교육’보다 ‘선별 지원’에 가까운 구조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향합니다.
“이 교육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가?”
교사는 정책의 주체가 아닌 대상자
부모는 정책에서 수동적 수혜자
아이는 제도 설계의 결과물로 존재
정책은 현장을 묻지 않았고, 아이를 중심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은 버텼습니다.
교사들은 감정과 시간을 쏟았고
부모들은 믿고 아이를 맡겼으며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말합니다.
“이제는, 다시 설계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쓰려 합니다.
아이를 중심에 놓고,
교사를 동반자로 삼고,
부모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영유아교육의 새로운 역사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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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대한민국 영유아교육 관련 국책기관, 그곳은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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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다시 쓰는 기록을 시작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