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도서관에 갔더니 입구에 '남동 100선'이라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투명인간>>이라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투명인간이라니, 무슨 뜻일까? 과학소설? 판타지 쪽인가?' 궁금증이 생겼다.
집에 와서 작가에 대해 검색해보니 위키백과에서는 성석제 작가를 '해학과 풍자, 과장, 익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그려내는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어떤 작품일까?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는 만수 이야기
《투명인간》은 '김만수'라는 너무나 평범한 이름을 가진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로 목차 없이 바로 시작되는 구조가 낯설었다. 만수 동생 석수부터 시작해서 만수의 가족, 친구, 동료들이 돌아가며 만수와 얽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가끔 길을 잃고 헤멜 정도로 화자가 너무 많은 점은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만수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장치로서는 효과적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그것도 여러 번씩 이야기하다 보니 '누구지?' , '어떤 관계였지?' 하며 교통정리가 필요할 때가 많아 흐름이 끊기는 점은 단점으로 느껴졌다.
《투명인간》에는 정작 만수 본인의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아서 만수의 입장이나 생각도 들어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모두의 눈에 비친 만수의 모습은 좀 모자란 듯해서 대부분 그를 무시하지만 정작 만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떡잎부터 착했던 만수
만수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 만석꾼 집안 사대 독자로 대학도 다니고 독립운동까지 했던 지식인이다. 그러나 감옥살이와 고문 후유증으로 생활력은 부족한 인물로 만수네 가족을 산골로 데리고 왔다. 어려서부터 만수의 선한 성품을 알아보고 예뻐했다. 만수는 평생 할아버지에게 들은 '염치를 알기 때문에 인간이 귀한 것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약초에 밝은 할아버지는 만수와 동생 석수가 캐온 나물을 보고 "우얘 두 형제 녀석이 뜯어서 들고 온 나물이 저희를 닮아 뺐구나."라고 한다. 만수가 가져온 참당귀는 맛있는 나물이지만 석수가 들고 온 개당귀는 흔하지만 독이 있어서 잘못 먹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한다. 그 한 마디로 두 사람의 성품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한 번에 이해가 됐다. 거의 스포 수준의 이야기였다.
희생의 끝판왕, 만수
만수를 제외한 다섯 형제(형 백수, 누나 금희, 명희, 동생 석수, 옥희)들은 모두 똑똑하고 공부를 잘한다. 특히 형과 석수는 수석을 도맡아 할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만수네 가족의 고통과 빈곤을 감당하는 건 만수의 몫이다. 이 소설에서 놀라운 건 그 고난을 감당하는 만수의 한결같은 낙천성과 책임감, 성실성이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남을 믿고 헌신적일 수 있는지 놀랍고, 보는 사람이 화가 날 지경이다. 그래도 한결같은 성실함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형제들 중에 만수가 가장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걸 보며 '아, 이제 됐다.' 잠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투명인간의 의미
직장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로 사람들을 챙기던 만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버지 장례식일 것 같다. '선한 끝은 있구나!'하고 내 맘이 다 흐뭇해졌다. 그러나 결국 만수는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도대체 어떤 거대한 난관이 찾아왔길래 하루에 스무 시간 가까이 일하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았던 만수가 무너진 걸까.
소설 첫 부분에서 이미 제시된 것처럼 투명인간이 된 건 만수만이 아니다. 투명 인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설정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종종 말하는 '나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야?'라고 할 때의 그 투명인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눈에 띄지 않는 존재, 무시당하는 존재,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투명인간》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 현대사가 워낙 우여곡절이 많다 보니 만수네 가족들의 삶도 지켜보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해서 모든 것이 더 소중했던 산골 마을의 나날들, 용의 검사, 채변 검사, 혼분식 운동, 배급 빵 등의 추억 돋는 그 시절 학교 모습, 산업화와 베트남 전쟁, 노동 운동, 88 올림픽 등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현대사의 면모들이 세밀화처럼 펼쳐져 지나온 날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쳐오는 동안 우리 부모님과 우리 세대의 지나온 시간들은 많이 힘겨웠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만수와 그 가족들의 삶은 참 어이없을 만큼 애처롭다. 《투명인간》 속 등장인물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을 사는 이가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특히 이 책 속의 여성들 가운데 행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은 더욱 안타까웠고, 우리 역사 속 여성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거나 정보를 주는 책을 주로 읽었는데 오랜만에 역사와 인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을 읽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세세한 부분을 되살렸을까 놀라운 대목이 많았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50대 이상에게는 힘들지만 그립기도 한 추억으로, 30대 이하에는 내가 겪지 않아 다행인 역사로 다가올 이야기' 정도 되지 않을까.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었던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 들어왔다. 아니, 그 둑이 원래 그렇게 낮고 허술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현실과 소설이 그리 멀지 않다는, 어떨 땐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작가의 함께 하려는 의도가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고 기운 나는 책은 아니었지만 나만, 내 삶만 힘든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