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한 지는 십년이 넘은 블로그에 올 3월 처음으로 글을 올렸다. 사실 그동안 나는 블로그를 한다는 생각이 너무 불편했다.궁금한 걸 검색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많은 정보를 찾고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블로그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자신의 하루하루,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리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내가 오늘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심지어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까지 알려준다는 게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꼼꼼하게 작성된 음식의 레시피나 맛집 정보, 리뷰 등을 올린 블로그는 정말 요긴했다. 하지만 내가 블로그를 안 하다 보니 공감, 댓글을 달 생각은 못했고 그저 맘 속으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낯 뜨겁고 미안해서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 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틈틈이 사진 찍고, 어딘가에 메모도 하고, 돌아와서는 글을 쓰며 사진도 편집하고, 추가적인 정보도 찾고, 빠뜨린 내용은 없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읽기 편할까, 보기 편할까, 재미있을까, 제목은 뭐라고 하지?, 해시태그는 뭘로 할까? 등등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고가 들어갔을까. 너무나 잘 알기에 요즘은 제대로 된 블로그 글을 볼 때마다 감탄과 존경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타고난 글빨이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고 글솜씨가 부족한 이에겐 더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블로거가 존재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본능적인 표현의 욕구가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겠지만 좋은 걸 나누고 싶고,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알려주고 싶은 욕구들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블로그에 들어가서 즐겨 읽는 글은 '감사일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이다. 소박하고 편안한 일상이 녹아있고 가족, 친구, 동료 간의 챙김과 배려에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부러울 때도 많다.
어떤 날에는 남의 일 같지 않아 걱정하게 되고, 그런데도 감사의 마음과 잘 될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존경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한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거의 못 만나고 인간관계의 폭이 확 줄어든 요즘은 더욱이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되는 시간이다. 그런 글들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분들께 참 고맙다. 요즘은 맘에 드는 글을 만나면 무조건 공감을 누른다. 맘에 남는 글에는 댓글도 남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 없는 이웃님이지만, 그래서 오지랖 같다 싶으면서도 그냥 읽고 입 쓱 닦고 지나갈 수는 없다.
처음에는 내 글을 기록으로 남기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기했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와 비교해보니 내 블로그는 너무 엉성해서 블로그 사용법도 공부했다. 책도 읽고 인터넷에서도 찾아보며 점차 구색은 갖춰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이웃이 갖고 싶어졌다. 일단은 공감가는 글이 있는 블로그를 이웃 추가했다. 그런데 그건 내가 그 분의 이웃이 되는 거지 내 이웃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ㅠ 서로 이웃 신청이 있는 건 알았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혹시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내 블로그가 어느 정도 봐줄만한 상태는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글이 쌓여가자 뭔가 열심히 써서 올렸는데 아무도 읽지 않고 반응도 없다는 게 점점 불만스러웠다. 용기를 내서 서로 이웃 신청을 하러 다니고, 좋은 글에는 공감과 댓글도 달며 손품을 팔았다. 아주 조금씩 이웃이 늘어났다. 공감과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창이 뜨면 반가운 마음에 앱을 열고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내가 쓴 글이 생각보다 조회수는 많은데 공감, 댓글이 전혀 없으면 '내 글이 매력이 없나?' 실망하게 된다. 그래도 열심히 썼고 전혀 도움이 안 된 건 아닐 텐데 '공감이라도 눌러주지!' 원망도 생긴다. 글을 올리고 반응이 계속 없으면 이웃님들 블로그를 방문해서 공감을 누르고 댓글을 단다. 얼마 후 그분이 내 글에 공감을 단다, 품앗이하는 기분! 관종이 된 것 같다.
공감이 달렸다는 알림창을 반가운 마음으로 확인했는데 조회수보다 공감수가 많을 때가 있다. 글은 열어보지도 않고 새 글이 떴다는 창에 제목만 보고 공감 버튼을 누른 것이다. 쓰느라 애썼겠다는 격려의 의미겠지만 기분이 좋진 않다.
갈수록 블로그 유지, 관리에 드는 시간이 자꾸만 늘어난다. 소재도 찾아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공감, 댓글 달아준 이웃 답방도 가야 한다. 새로 올라오는 이웃들 글도 읽고 감동이 우러나서 혹은 예의상으로라도 공감과 댓글을 단다. 갈수록 글을 대충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왜 내 글에 엉뚱한 댓글이 달렸던 건지 이젠 이해가 된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파워블로거들은 그 많은 이웃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건지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 관리 시간, 글 쓰는 시간을 딱 정해 놓고 하라는 조언이 나오는 거구나 깨닫는다. 일하면서 블로그까지 잘하는 사람들은(이런 사람이 정말 많을 것이다.) 초능력자들인 걸까.
원래 핸드폰이 어딨는지도 신경 쓰지 않던 내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다. 눈길은 틈만 나면 폰을 향한다. 보고 듣고 하는 일마다 "블로그에 올릴까?" 셀카는커녕 사진을 거의 안 찍던 내가 뻑 하면 "잠깐! 사진 좀 찍자!"를 외친다. 이러니 가족들이 "엄마! 블로그 중독이야?"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좀 더 중독자로 살고 싶다. 블로그를 하는 덕분에 신문도 열심히 읽고, 메모도 열심히 한다. 사진을 자주 찍으니 기록이 쌓여간다. 책을 읽을 때도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느라 생각이 정리된다. 이웃님들 블로그를 보다 자극받아서 운동과 필사, 명상도 열심히 한다. 유용한 정보를 주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쓴다. 이러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다.ㅎㅎ
난 여전히 내 하루 일상을 오롯이 알리는 글을 올리진 못한다. 아직 나의 포지션을 명확하게 잡지 못했기 때문인지 불편하고 주변 사람들이 원치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 열심히 '감사일기'를 쓰며 내 일상을 속속들이 옮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처럼 블로그를 열심히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처럼. 감동을 주는 글이 결국 솔직한 내 일상의 공개에서 나온다면 블로그를 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무리 블로그 중독이라도 우리도 사생활이 있다고!"라고 외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날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블로그와 늦바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