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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Mar 31. 2022

내가 먼저 떠날 줄 알았는데

퇴사하고 싶지만 이직은 귀찮은, 아직은 직장인

지금의 직장에서 근무한 지 딱 2년이 되었을 때, 갑자기 번아웃이 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지금 당장 끝내야 할 일이 뭔지도 알겠는데 그것을 해야 할 의욕도 그 어떤 에너지도 생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결코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는데, 아니 내가 선택한 것들이 고작 이런 것뿐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매달 대출금과 카드값을 스스로 내는, 제 밥벌이를 하는 어른이어야 하니 버틸 수밖에.


그러다 한 달 여쯤 지났을까. 나의 번아웃은 회복될 기미가 없이 점점 더 바닥을 향해 가고 있을 때쯤, 2년 간의 나의

노-력이 (말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하였으나 결과물 상으론)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아, 여기까지가 내 몫이구나’ 싶었다. 난 매 순간 집중했고 최선을 다했고 좋은 성과들을 냈으니 후회도 없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지, 그놈의 번아웃은 진정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게 만드는 것임을 몰랐었다. 퇴사는 하고 싶지만 이직을 알아보는 것도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업무는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내 일상과 관련한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버린 상태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역시 괴로웠다.


일은 일일 뿐이니 내 본연의 삶에 집중해 운동도 하고 즐거운 것들을 찾아 시간을 보내라 한다. 건강한 식단을 챙기고 잠도 푹 자라고도 한다. 산이나 바다에 가서 좋은 경관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으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시간들이 모조리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산이나 바다라니.


무의미한 시간들이 그냥 1분 1초를 잡아먹고 있는데, 주변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난다. 아니, 내가 먼저 떠나려 했는데 선수를 뺏긴 기분이다. 나의 퇴사는 약간 시원한 감정이 조금 더 컸다면 떠나보내는 입장은 뒤숭숭 만 하다. 요절도, 파이어족도 이젠 너무 늦어버린 나이다. 생애 처음 사본 연금복권은 한자리의 숫자도 맞지 않았다. 매달 500여만 원을 20년 동안 받는데, 당첨금을 받는다면 당장 퇴사부터 하겠다는 계획은 개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내일도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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