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쉬이 잠들지 못했습니다. 귀를 찌르는듯한 이명에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유튜브에서 종소리를 켜놓고 소리치료도 하고, 화이트와인을 수면제인양 마셨지만 마음속 슬픔이 뿜어져 나와 더 잠과 멀어졌습니다. 지난주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다 먹었다는 걸 확인하자 불안 증세가 밀려왔습니다.
매번 생각했습니다. 오늘 죽어도 별로 미련도 슬픔도 없다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남은 것들을 처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았지만, 사실 떠나는 이가 그 모든 걸 생각하고 가진 않으니까요. 얼마 없는 재산과 소장품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유서로 써봅니다. 줄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들이 반복됩니다. 전 그렇게 매달 유서를 씁니다.
나의 장례식은 파티 같길 바라봅니다. 묘도 화장도 싫지만, 해야 한다면 화장해서 영국 남부 브라이튼의 바다에 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도 아니면 가족들이 자주 갈 것 같은 바다이길. 수영을, 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드넓은 푸른 바다라면 가슴이 뻥 뚫린 듯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니까 더욱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한동안 삶과 죽음이 가로지르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당시의 의학은 지금보다는 앞서지 않았던지, 꽤 많은 죽음을 만났습니다. 전 나름 어렸던 저의 충격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별의 시간 뒤에 참 많이 울었고 슬펐는데, 저의 마음을 달래는 시간은 짧았습니다. 그날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다준 걸까요. 삶의 소중함을 그토록 진하게 배웠지만, 정작 저의 삶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서를 쓴다는 것은 나의 삶이, 나의 생이 소중해서일 수도 있겠죠. 살기 위해서, 오늘을 버티기 위해서 내 안의 슬픔과 우울과 불안을 뽑아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전 어떠한 답도, 안정도 얻지 못하지만, 그렇게 매달 유서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