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by 민정애

지금 내가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남태평양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곳은 호주 남단의 도시 멜버른에 있는 도크랜드 파크다. 물리적인 장소는 이곳 파크지만 영혼의 자리는 어디일까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 일까. 지난해 13시간에 걸친 심장 대수술을 받았다. 회복기를 잘 거쳐 좀 더 심신의 안정을 찾으라고 아이들이 마련해 준 이 번 호주로의 여행, 3주 일정으로 시누이 가족이 사는 멜버른에 여장을 풀었다. 느긋하게 멜버른을 둘러보고 무엇보다 나다움을 찾아 나머지 인생을 도덕적으로 올바르며 진지하되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전환점으로 만들고 싶다. 고로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의 회귀다.

지난 2주 동안은 남편과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100년 된 증기 기관차를 타고 창문에 걸터앉아 단데농 퍼핑빌리 숲길을 천천히 달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기도 했고,

19세기 골드러시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둔 소버린 힐에도 들러 금이 체취 되는 과정을 보기도 하고 사금도 걸러 보고 박물관도 둘러보았다. 중세풍의 직원들 의상도 인상적이었다.

남반부에서 제일 높다는 유레카 스카이텍의 유리 바닥으로 된 디엣지에서의 짜릿함을 맛보며 내려다보았던 멜버른 시티의 아름다움,

골프를 좋아하는 남편과 시누이 가족을 따라나섰던 몇 군데의 골프장 투어에서는 캥거루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듯한 엉뚱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뽑혔다는 호주 남단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 1차 대전 때 참전 용사들이 16년 동안 삽과 곡괭이만으로 만들었다는 243km의 해안 도로다. 그 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암석들이 풍파를 거치며 만들어낸 대자연의 거대한 조각품이 자태를 드러낸다. 섬처럼 떠있는 암석 12개가 예수의 12제자들을 닮았다고 12 사도상이라 이름 붙여졌단다. 거대한 자연 앞에 압도당한 느낌으로 천천히 해안을 거닐며 그저 자연에 순응하리라 다짐해 본다.

그다음 펭귄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던 필립 아일랜드로의 여행도 잊을 수 없다. 바다에 먹이를 찾아 나섰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펭귄들을 보기 위해 어두워질 무렵 해안 모래사장에 마련된 계단식 관람석에 앉아 먼저 안내원의 주의 사항을 듣는다. 카메라 불빛에 펭귄 눈이 노출되면 눈이 멀게 되니 사진 찍기 금지, 인기척에 놀라면 안 되니 조용히 하기 등이었다. 야생 펭귄이 서식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호주 정부는 매년 120만 명의 관광객이 남긴 수익금 전액을 생태계 보호를 위해 재투자한다고 한다. 안내원의 주의 사항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펭귄들의 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작은 리틀 펭귄이다. 그 작은 몸으로 아침 해뜨기 전에 나가 하루 15~50km를 헤엄치며 먹이를 구해 저녁에 돌아와 새끼에게 먹이를 준단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심이 든다. 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 이 세상에는 동물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한 번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얼마 동안 펭귄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바다에서 나와 뒤뚱뒤뚱 그것도 꼭 여럿이 무리 지어 온다. 해변에는 갈매기들이 귀가하는 펭귄을 노리고 있다. 먹이를 갈취하는 갈매기에게 먹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리 지어 오는 것이란다. 갈매기의 공격을 받으며 어렵게 간직한 먹이를 각자 자기 새끼가 기다리고 있는 언덕 기슭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눈물겨울 만치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수많은 별이 내 마음에 내려앉는다. 갑자기 진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내가 수술하고 입원했을 때 그토록 나를 염려하시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은커녕 돌아가셨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병원에 누워 있었으니 이 불효를 어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수많은 별 중에 아버지의 별을 찾아 헤맨다.

윤동주 님의 시 ‘별 헤는 밤’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하나에 아버지, 아버지,라고 덧 붙여 본다. 옆에 있는 남편 몰래 눈물을 훔친다.


2주간의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남편은 일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만 남아 일주일을 더 보냈다. 물론 남편과의 여행도 즐겁지만 혼자 하는 여행도 좋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트램을 타고 시티로 나와 비짓터 센터에서 시내 관광 책자를 구했다. 멜버른 시티에는 여행객을 위한 무료 시티투어 트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트램을 타고 정류장마다 내려 구경하고 다음 트램을 타면 편리하게 시티투어를 할 수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혼자 멜버른 시티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내 한 복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공원에 앉아 사색도 하고 멜버른 대학 도서관에 들러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독서도 하며 나만의 만족감을 느껴 보기도 했다. 밴쿠버에 있을 때 자주 들렀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쿠버 도서관에서 느꼈던 그 뿌듯했던 마음이 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도서관에 들를 때 기분이 참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로 한국에서 도서관에 자주 가지 못했다. 이번에 돌아가면 자주 도서관에 들러야겠다. 야라강 쿠르즈 투어 중에 만났던 내 또래의 오스트리아 아줌마와 같이 나머지 여행을 즐긴 일 또한 잊을 수 없다.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물리적인 이 번 여행은 끝났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고요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는 최종 목적지를 확인해 본다.

지금 내가 누워있는 도크랜드 파크, 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간다.

흰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며 나는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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