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대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

by 민정애

아들 가족이 두바이로 이주하기 전 아들 가족과 2년 정도 같이 살았다. 손자가 4살, 손녀가 1살 때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손자들 재롱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었다. 며느리 성격이 상냥하기 때문에 정말 나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며느리 마음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아침마다 함박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하는 손주들은 우리 부부에게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 그때 이미 효도를 다 받은 느낌이다.


같이 살기 시작한 첫 번째 토요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는 나에게 아들이

“엄마, 아침 준비하지 마세요. 우리는 토요일 아침에는 브런치 카페에 가서 브런치 먹어요. 나도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힘들었고 나영(며느리) 이도 일주일 내내 육아 때문에 힘들었으니 토요일은 쉬어야 하니까요. 엄마 아빠도 같이 가요.’


우리 부부는 엉겁결에 따라나섰다. 집 근처에서 좀 떨어진 카페골목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예쁜 가게들은 흡사 유럽의 어느 멋진 카페거리를 연상케 했다. 그중 한 곳에 들어서니 우리 아기들도 벌써 많이 와 본 듯 익숙하게 자리 잡고 주인과 인사를 나눈다. 아들 내외가 메뉴판을 보여주며 시키란다. 이름도 이상한 음식들이 서로 자기를 시켜 달라는 듯 예쁘게 치장하고 있다. 구세대 시어머니는 서로 자기가 맛있다고 뽐내는 음식보다 가격표만 눈에 들어온다. 엄청 비싸다. 못 말리는 나의 궁상. 역시 나는 나답게 제일 싼 걸로 시켰다. 눈치 없는 남편은 비싼 것을 시킨다. 며느리도 아들도 아이들까지도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시키는데 나만 그러지 못한다. 먹으면서 음식 값을 속으로 계산한다. ‘아이고 일주일 아니 열흘 반찬값은 되겠네. 월급쟁이가 이렇게 낭비하면 어쩌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표정은 즐겁기만 하다. 나도 속마음과는 달리 억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다음 토요일, 음식 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멋진 브런치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브런치카페보다 더 좋은 재료를 써서 호밀빵 샌드위치도 만들고 신선한 야채와 훈제 연어로 샐러드도 예쁘게 담아놓고 생과일주스도 만들어 테이블 세팅을 해 놓은 다음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들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돈도 아끼고 건강도 생각하는 홈메이드 음식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들 내외가 나오면

‘짠! 내가 이렇게 멋지게 요리해 놓았다. 브런치 카페보다 낫지.’

그러면 며느리가

‘어머 어머니, 멋져요, 이런 걸 어떻게 손수 하셨어요, 역시 우리 어머니 요리 솜씨는 끝내줘요. 이제 브런치 카페에 그만 가야겠네요.’

이런 말을 기대했는데 기대와 달리 며느리는 그저 시큰둥이다. 아들 역시 그저 무표정. 나는 깨달았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멋진 장소에서 그들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것, 내가 눈치가 없었구나. 나는 며느리에게 제안했다. 다음부터 브런치카페는 너희들끼리 가고, 우리 부부는 우리 식대로 아침을 먹고 싶다고. 그다음 토요일 우리 부부는 내가 끓인 된장국에 현미밥을 맛있게 먹으며 브런치를 이해하려 애써 미소 지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작년에 아들 가족이 살고 있는 두바이에 다녀왔다. 며느리 살림 솜씨가 야무졌다.

“어머니, 어머니하고 같이 살 때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 솜씨가 이곳에서 이렇게 쓰일 줄 몰랐어요, 이곳에 있는 우리 또래의 엄마들이 어떻게 육수까지 낼 줄 아냐고 놀래요.”

“육수 낼 줄 모르는 주부가 어디 있어, 그건 기본이지.”

“아니에요, 내가 음식 하는 거 보고 칭찬이 자자해요. 다 어머니 덕분이에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며느리는 말 도 참 예쁘게 한다. 정말 내가 머물렀던 한 달 동안 며느리는 최선을 다해 집 밥을 차렸다. 물론 외식도 많이 했지만 집 밥 할 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이제 두 자리 숫자 빼기를 배우는 손자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기에 내가 가르쳐주고 싶어 앞의 자리에서 10을 빌려다 빼는 우리가 배운 방식대로 설명을 해주니 저녁 준비를 하며 듣고 있던 며느리가 ‘어머니 그렇게 설명해주지 말아요, 요즘은 그렇게 안 배워요. 보수 개념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면 헷갈려해요.’ 순간 으이크 내가 또 실수했구나 내 딴에는 할머니가 잘 가르쳐 준다고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매사가 조심스럽다. 내 영어 실력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혹시 내 발음이 좋지 않다고 할까 봐 조심스럽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았다. 나도 시어머니가 우리 애들에게 맞지 않는 수학 공식이나 좋지 않은 발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영어를 한다면 싫어했을 것이다. 며느리의 말이 섭섭했지만 한 발 물러 생각하니 이해가 간다. 시어머니 앞에서 바로바로 할 말을 다 하는 며느리가 부럽기도 하다. 참고 사는 며느리가 착한 것 같지만 어설프게 착한 사람이 우울증 걸린다는 말이 맞는다. 나는 어설프게 착해서 어른들께나 아이들에게도 할 말 다 못하고 산다.


순간을 참으면 평생이 편하다고 가르쳐주신 어른들의 말씀이 이 시대에는 안 맞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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