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들 오는 날

by 민정애

손녀들의 얼굴을 보며 충만한 기쁨으로 오늘을 만끽한다.

며느리가 일을 하는 관계로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인 작은 아들의 두 딸이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 우리 집에 와서 서너 시간 머물다 돌아간다. 손녀들이 오는 날이면 우선 집 청소를 다른 날 보다 깨끗이 하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놓고 동화책을 뒤적여 읽어 놓는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서다. 나는 손녀들이 할머니 집에 오면 푸근함을 느끼며 할머니의 옛날 얘기에 귀 기울이며 자유롭게 뒹굴다 가기를 원한다. 손주들의 유년기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어른 된 도리일 것이다. 여리 디 여린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시기 그 깨끗한 마음 안에 온 세상 온갖 멋진 가능성을 가득 담아주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학년 아이가 사교육으로 피아노, 국어, 연산, 한자, 영어, 미술, 방송댄스, 태권도를 하니 집에 오면 숙제하기 바빠 할머니의 무릎에서 옛날 얘기를 느긋하게 들을 시간이 없다. 연필만큼 가는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영어 단어도 척척 쓰고 한자도 정확하게 쓰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는 이런 거 중학교 때 배웠는데 너는 어떻게 벌써 이런 걸 다 하니!’

라고 말하며 칭찬해 주지만 한 편으론 안쓰럽기 그지없다.

며느리에게 아이들 사교육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혼자만 안 하면 친구들 앞에서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져 지금 하는 것만큼은 기본으로 해야 한단다. 나는 우리 아들 며느리만큼은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길 바란다. 멀리 내다보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부부가 서로 사랑으로 감싸고 사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그 양분으로 충분히 신비로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이 글을 며느리가 읽는다면 ‘어머니는 요즘 교육 현실을 모르셔서 그래요.’

라고 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유년기에 현실적인 온갖 교육 콘텐츠로 여린 새싹을 무장시키는 것보다 ‘성냥팔이 소녀’에 가슴 아파하고 ‘미운 오리 새끼’가 온갖 괄시와 천대 끝에 백조가 되는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알고 ‘빨간 머리 앤’의 우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영어 단어 몇 개 더 빨리 아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스위스의 의사 폴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의 언어로 어린이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시인의 말로 인생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의 신비로운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현실주의자로 만들려는 부모라 하더라도 어린이의 눈동자에 머물러 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마술적인 빛을 인정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며느리에게 부탁해야겠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오는 날 만큼은 숙제 좀 줄여 달라고.

유년기는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우리 손주들의 유년기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보면 ‘나는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내가 죽는 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손주들을 끔찍이 사랑했다는 생각으로 미소 지을 수 있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들아, 살아내기 힘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