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지금도 20년 이상을 연락하고 지내는 캐나다인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아이들 유학 시절 사귀었던 사람들이다. 그때 캐나다를 오가며 몇몇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연수 갔을 때 알게 된 학교 선생님들도 있고 수영장이나 관광지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람도 있고 가깝게 지냈던 이웃집 사람도 있다. 그들은 또 나에게 자기들의 친척집에 데리고 다니며 나의 친구관계를 넓혀주었다. 그때 나는 내가 참 인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과 수영을 하는데 점잖게 생긴 할아버지가 나에게 학생들하고 온 걸 보니까 선생이냐고 물어오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영어로 외국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해 한참 말하고 싶을 때였으니 그분이 말을 걸어 준 것에 감사했다. 자기는 이태리에서 35년 전에 이민 왔고 저널리스트였으며 60세에 은퇴했는데 현재 나이는 64세고 지금은 컴퓨터와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가족은 고등학교 선생으로 있는 자기 부인과 딸 둘이 있다고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저널리스트였다는 그의 말에 나도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캐나다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으니 어드바이스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또 할아버지가 피아노를 배운다니 그것도 멋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피아노를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대화가 통할 것 같았다. 그가 어느 학교에서 연수하느냐고 묻기에 학교 이름을 댔더니 그곳까지 어떻게 다니느냐고 물어본다. 우리 집은 뉴웨스트민스터이고 학교는 노스벤쿠버에 있었다. 그러니 버스, 스카이 츄레인, 씨 버스를 갈아타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더니 그렇게 불편하게 어떻게 다니느냐며 내일부터 자기가 태워 준단다. 나는 역시 캐나다 사람들은 친절 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 아파트 주소와 등교 시간을 알려주고 헤어졌다.
이튿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멋진 혼다 세단이 멈춰있고 나를 본 그 노신사는 문을 열고 내리며 반갑다는 인사로 나에게 허그했다. 허그 인사가 어색한 나는 얼른 허그를 풀었다. 그다음 그는 내가 탈 쪽의 문을 손수 열어주며 내가 앉으니 눈은 감으란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일단 하라는 대로 눈을 감았다. 또 이번에는 눈을 뜨란다. 눈을 떠 보니 뒤에 숨기고 있던 빨간 흑장미 세 송이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문까지 친절히 닫아준다. 아직까지 남편에게도 장미꽃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 나는 그저 어색할 뿐이다.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를 부르기에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나도 따라 불렀다. 분위기 없는 남편을 약간 원망하면서. 노래가 끝난 다음 ‘벨라, 벨라, 유 아 쏘우 벨라’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기에 벨라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이태리 말로 뷰티플이란다. 나는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더니 너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 꼭 흑진주 같다, 나는 동양인들의 검은 눈동자를 좋아한다며 나보고 지금 거울을 보라고 앞에 붙어있는 거울까지 펼쳐 준다.
세상에! 나는 나이가 들면서 눈꼬리가 처진 내 눈이 예쁘기는커녕 작은 눈이 항상 불만이었는데, 아무튼 듣기 좋은 말을 계속하더니 드디어 본심을 들어낸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키스 미, 키스 미’를 연발한다. 내가 못 들은 척 하자 이번에는 ‘플리즈 플리즈’를 외치며 나에게 애원한다. 나는 당황했지만 심호흡을 하고 ‘노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뜬다. 네가 원치 않는다면 강요하진 않겠지만 너랑 꼭 한번 자고 싶다. 너도 날 원하지 않니? 속으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정말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몇몇 캐나다 분들이 친절해서 당신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오면 더 이상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 유감이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남의 남자하고의 일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특히 나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랬더니 그의 말이 걸작이다. 차 앞에 놓여있는 기도하는 소녀상을 가리키며 나도 가톨릭 신자이다 신도 우리 인간이 즐기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러니 우리 함께 즐기자며 계속 플리즈 플리즈를 연발한다. 남자는 다 늑대라더니 할아버지 늑대도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드디어 학교 앞에 도착했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거절하는 나에게 키스라도 한 번 해 달라는 그를 뿌리치고 내려 학교로 달려가며 심호흡을 했다. 이태리 남자들이 정열적이라더니 할아버지까지 그럴 줄이야. 그동안 만났던 몇몇 친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 믿었는데 이제는 사람 사귀는데 신중해야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나에게 그동안 아무 조건 없이 차를 태워줬던 이웃집 할아버지가 새삼 고마웠다. 그분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만약 그 남자가 네가 원치 않는데 너를 만진다거나 강제로 키스라도 할 때는 경찰에 신고하면 너는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 조심하라고 충고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거울을 볼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내 눈이 흑진주 같다는 그의 표현이 너무 우습지 않은가.
어느 날 남편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더니 왜 웃느냐고 묻기에 그 이야기를 해 주며 흑진주랑 사니 영광인 줄 알라고 말하며 함께 웃었다. 장미꽃은커녕 사랑한다는 말조차 못 하는 남편이 믿음이 가는 것은 다른 여자 에게도 그런 행동은 할 수 없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요즘 TV 뉴스에 성추행, 성폭행 범죄에 대한 뉴스가 종종 나온다. 그 당시는 사실 우리나라에 그런 일을 이슈화하지 않아서 잘 몰랐었다. 그 할아버지가 계속 플리즈 플리즈를 연발했던 것은 나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했다가는 성추행범으로 몰리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20여 년이 흘러 내가 지금 그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