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배추가 노란 속이 꽉 찼다. 동치미 무도 반질반질 예쁘게 생겼다. 사돈댁께서 손수 농사지으신 김장거리를 보내셨다. 우리는 남편과 나 두 식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김장을 담글 필요가 없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김치만큼은 사 먹은 지 오래다.
냉장고에 먼저 담은 김치도 있고, 생각 끝에 며칠 전에 TV에서 본 배추 단호박 물김치를 담가 보기로 했다. 큰 손자 지환이가 백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선 속이 꽉 찬 배추 두 통을 다듬어 소금물에 절이고 다시마 국물을 준비한다. 우선 배 2개 사과 1개 양파 2개 마늘 생강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 짜는 주머니에 넣어 찌꺼기를 걸러낸다. 그다음 단호박을 쪄서 으깨 위의 국물에 섞으니 샛노란 색깔이 맛깔스러운 비주얼이다. 남편은 옆에서 배 껍질도 벗겨주고 양파도 다듬어 주고 무거운 국물 옮기는 일을 해준다. 노부부가 살면서 이런 시간을 서로 공유하는 것, 이것 또한 행복이리라 생각하며 정성 들여 김치를 담근다.
며칠 전 담근 배추 단호박 물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노란 단호박 색깔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맛있을 때 며느리에게 전해줘야 하는데 오늘은 일요일, 축구를 하는 6학년인 손자 지환이가 경기도 연천군수배 초등학교 축구대회 결승전이 있는 날이다. 그동안 여러 날에 걸쳐 예선을 통과해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본인이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까지 축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나는 손자가 취미 정도로만 운동을 했으면 싶다. 앞으로 손자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지 모르지만 혹시 운동을 업으로 한다면 몸을 많이 상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게 되니 말이다.
또 하나 며느리의 손자 뒷바라지가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점심때쯤 결승전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최우수 키퍼상까지 받았다는 소식이 왔다. 손자가 축구를 하고부터 얼굴 보기가 어렵다. 거의 주말마다 시합이나 연습이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 또한 손자 뒷바라지에 바쁘니 우리 집에 자주 못 오는 것이 당연하다.
며느리에게 김치를 담가 놓았으니 가져가라 전화하니 요즘 바빠서 집에서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들어 반찬 처리가 어렵단다. 요즘은 자식들에게 반찬 가지러 오라는 전화도 마음대로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리 내 음식 솜씨가 좋으면 무엇 하나. 같이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걸. 그러나 나에겐 아직 함께 사는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노란 배추 단호박 물김치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메밀국수 말아 영원한 내편인 남편과 마주 보며 맛있게 먹어야겠다.(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