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봄이 다가온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당연한 듯 맞이했던 봄이 이제는 정말 뜻깊다. 젊었을 땐 몰랐다. 범사에 감사하란 말씀을 억지로 실천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야말로 Thanks for everything이다. 이런 마음이 나이 값인가 보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라인에 사는 분과 처음 인사하게 되었다. 나이도 비슷한 것 같고 성격도 좋아 보여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 자기 층에서 내리지 않고 나를 따라 올라왔다.
아파트라는 곳이 같이 옹기종기 사는 것 같지만 문 닫고 들어가면 정말 이웃에 누가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이웃사촌도 만들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렇게 그 분과 알게 되었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그분과 나는 취미가 같았다. 내가 합창단 단원인데 그분도 다른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취미로 하는 피아노 실력도 서로 비슷해 대화의 공통분모가 있어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몇 번 만나진 않았지만 이웃에서 이렇게 좋은 친구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 소중한 인연 잘 이어가고 싶다.
나는 특별한 일 없으면 남편과 같이 운동하러 나간다.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거의 루틴으로 정해졌다. 오늘은 남편이 외출해서 혼자 나갈까 하다가 그 친구에게 전화했다. 마침 자기도 방에서 뒹굴고 있다며 나의 제안을 반가워했다. 우리는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바람은 아직 쌀쌀했지만 봄기운이 완연하다. 나무에서는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성급한 나무들은 삐죽이 꽃잎을 내밀었다가 꽃샘바람에 놀라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긴 겨울을 지낸 호수 위의 물오리들은 봄의 왈츠를 추느라 분주하다.
전망대에 서서 물오리들의 춤에 우리의 노래를 슬쩍 얹어본다. 여린 봄빛에 반짝이는 호수에서 춤추는 물오리들을 바라보며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남촌을 시작으로 봄노래 몇 곡 부르며 봄 마중을 했다.
그 친구와 함께 노래 부르며 좋은 친구 하나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다니는 곳에서 혼자는 절대 못 부르는 노래도 둘이 같이 하니 자신감이 생긴다. 호수공원에 새로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우리는 조심스레 노래 불렀다. 할머니들만이 가질 수 있는 뻔뻔함으로 준비 없는 버스킹을 했다. 손뼉 쳐주며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엄지 척을 해주며 웃어주는 분들도 있었다. 어떤 부부는 우리 주변을 맴돌다 우리의 노래가 시원찮았는지 자기들이 화음을 넣으며 같이 불러 주었다. 그 부인의 소프라노 실력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렇게 또 그분들과 인연을 만들었다.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분들이었다. 산속에 하얀 뾰족탑이 있는 아담한 교회사진을 보여주며 놀러 오란다. 도심에 자리 잡은 큰 교회보다 정감이 가는 그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분들과 같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곱씹으며 이 할머니의 마음에도 빨간 풍선 하나 띄워본다. 또 한 번 주어진 나의 봄을 경건하게 맞이해야겠다.
<강 건너 봄이 오듯> 송 길자 시. 임 긍수 곡.
'앞 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 거나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내 마음 어둔 골에 나의 봄 풀어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없이 그리움 말없이 말없이 흐르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