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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by 민정애


버지니아의 하늘은 오늘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밝고 선명한 쪽빛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순간순간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바람과 구름의 능력에 감탄하며 하늘이란 무한한 크기의 캔버스와 사랑에 빠진다. 하얀 새털구름 사이로 어느새 붉은색 물감을 흩뿌려 나를 황홀하게 하는가 하면 검은색 먹구름이 달려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자연의 무한한 변화를 새로운 눈으로 경이롭게 바라보지 않고 무심히 보낸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새삼 내가 이 아름다운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깨달음으로 기쁨을 만끽한다.


지난 열흘간의 미동부 캐나다 일주 여행은 가는 곳마다 눈을 뗄 수 없는 광경들이 즐비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강행군이었다. 70이 넘은 우리 부부에게 10일간의 패키지여행이 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무 이상 없이 잘 따라다녔다. 이 번 여행이 우리에게 마지막 장거리 여행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직은’ 하며 슬그머니 궤도를 수정한다.


지금은 여행을 마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버지니아의 아들집에서 머물고 있다. 마을 전체가 숲 속에 싸여 있어 노루, 사슴이 앞마당까지 자연스럽게 놀러 오는 곳이다.

이번 여행의 큰 소득이었다면 그동안 성찰했던 영성을 깨달은 것이다. 바쁘게 따라다녔던 여행이 즐거움이었다면 조용한 버지니아에서는 매일 만나는 순간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어지는 영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남은 여생을 영성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성찰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했던 영성이 바로 내 마음 안에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매일 아침 산책길에 청량한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때,

하늘의 변화무쌍함을 바라볼 때,

숲 속에 들어와 수풀사이로 비치는 주황색 빛줄기를 배경으로 나뭇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을 바라볼 때,

아침마다 아들이 정성껏 내려주는 라테의 향기를 음미할 때,

잘 자라준 밝은 모습의 손주들을 볼 때.

카잘스가 연주하는 바흐의 프렐류드를 들을 때.

이 순간은 나를 겹겹이 싸고 있던 복잡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고요와 평화가 마음 가득 차오르며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런 감사의 순간이 바로 영성이라 믿는다. 고요하고 감사한 마음을 유지하며 모든 일에, 특히 타인을 위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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