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 출신 시골 소녀가 청주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 왔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소녀는 추석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추석 전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기차를 기다리던 소녀의 눈에 풀빵 수레가 눈에 들어왔다.
기차 시간 맞추기 위해 급히 오느라 점심을 거른 소녀는 아껴두었던 100원을 꺼내 풀빵을 샀다. 따끈한 풀빵 여덟 개가 든 종이봉투를 받자마자 한 개를 입에 넣는 순간 시골 역에 마중 나와 계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나머지 일곱 개는 할머니 갖다 드리기로 결정하고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다.
기다리던 기차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점심때부터 기다리던 기차는 저녁때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그때는 연착은 일상이었으니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 배가 고프지만 가방 속의 풀빵은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께 꼭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정해진 시간보다 여덟 시간이나 늦게 기차가 도착했다.
집이 있는 시골 간이역인 음성 소이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깜깜한 밤이었다.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 할머니가 넓은 치마폭으로 손녀를 맞아주었다.
할머니도 10시간 정도를 꼬박 대합실에서 기다린 것이다.
소녀는 가방에서 찌그러진 풀빵을 꺼내 할머니와 정답게 나누어 먹으며 논둑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다 식어버린 찌그러진 풀빵이었지만 그 달콤했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소녀는 어느덧 70줄에 접어들었다.
지금도 추석이 돌아오면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었던 기억이 한 폭의 그림으로 소녀의 가슴에 남아 있다. 얼마나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인지.
추석 연휴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추석에 대한 어릴 때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패널로 나온 어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 중 위의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고 애틋하게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린 소녀의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10시간 넘게 대합실에서 손녀를 기다려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모든 것이 풍부한 요즘 아이들은 이런 정서적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중학교 때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나도 어릴 적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착한 아이였나 보다.
중학교 일 학년 때 체육대회를 마치고 선생님께서 사탕 2개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 사탕을 받는 순간 집에 있는 막내 동생이 생각났다. 그때 동생은 3살 아기였다. 다른 친구들은 받은 즉시 사탕을 까먹는데 나는 동생 주려는 마음에 주머니에 간직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사탕을 동생에게 꼭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그때 그 사랑스러운 나에게 미소를 보낸다.
‘너 참 예뻤구나 그때 그 마음, 죽는 날까지 간직하도록 내 마음에 있어다오.’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