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by 민정애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코로나 이후 세상은 모든 것이 디지털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다.

언컨택트니 온택트니 하면서 모든 것을 디지털 쪽으로 트랜스포메이션 하지 않으면 마치

생존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디지털에 익숙지 않았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그동안 안 하던 SNS 계정도 만들고, e뱅크도 다운로드하고, 전자 지갑도 만들고,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는 앱 사용 등을 배우느라 애썼지만 젊은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루저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아날로그의 반격이란다.

참 어쩌란 말인가?

이런저런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기술이 기가 막히게 좋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디지털 컴퓨팅은 지난 50년 가까이, 퍼스널 컴퓨팅은 지난 30년 동안, 인터넷은 20년 동안,

스마트폰은 10년 동안 우리와 함께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특정 작업을 수행할 때 디지털 솔루션을 먼저 생각한다.

작업을 수행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널리 사용되며, 가장 저렴하고,

가장 확실한 도구가 디지털이다. 따뜻한 쿠키를 집으로 배달시키는 일이나 클라우드에

거대한 데이터 센터를 마련하는 일 모두 두 손가락을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손쉽게 끝난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디지털의 압도적인 우수성이 아날로그를 쓸모없게 만들었고

아날로그 기술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특정 디지털 기술과의 밀월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기술의 진정한 장단점을 좀 더 쉽게 평가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경우 오래된 아날로그 도구나 아날로그적인 접근법이 더욱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아날로그의 타고난 비효율성을 점점 탐하게 되고 아날로그의

약점은 새로운 강점이 된다.

그래서 아날로그의 반격이 중요하고, 그래서 아날로그 제품과 아이디어의 가치 상승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는 이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제품이나 서비스와 소통하기를 원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위해 기꺼이 웃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그것이 디지털 기술보다 훨씬 번거롭고 값비싼데도 말이다.”


인간 중심적인 경험, 소통, 맞는 말이다.

다시 턴테이블에 LP가 유행이란다.

유행은 돌아온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턴테이블에 LP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턴테이블에 대한 향수가 있다. 처음 직장생활 때부터

월급날이면 레코드 가게에 들러 LP를 사 모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전축이 있었고 이미자 판이 몇 장 있었다.

그때 내가 샀던 LP판은 탐 존스의 딜라일라를 시작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캐럴송,

존 바이즈의 해 뜨는 집, 솔베이지의 노래 등 주로 팝송과 가곡이었고 또 큰맘 먹고 해설집이

곁들여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세트를 산 기억도 있다.

결혼할 때 혼수로 그 당시 최신 디자인 전축이었던 천일 오디오 (오디오란 이름이 그때 있었는지 아니면 전축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와 그동안 사 모았던 LP판을 소중히

가져와 신혼집에 자랑스럽게 들여놓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 아이들 기르면서 녹음테이프로 바뀌고 언젠가부터 CD로 그다음 MP3 등

음원을 다운로드하기에 이르렸다. 그 사이 이사 몇 번 다니며 전축도 없애고 레코드판도

언제 어디서 버렸는지 기억도 없다.

오늘 책을 읽으며 생각하니 소중했던 나의 추억을 너무 생각 없이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추억이지만,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전축, LP가 신제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 책에는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오프라인 매장, 일, 학교, 실리콘벨리

등의 사례가 자세히 적혀있다.

책을 읽다 보니 모두가 우리 세대가 겪어온 일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박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을 며칠을 기다려 인화점으로 찾으러 갈 때의 설레임,

용돈을 아껴 즐거운 마음으로 들렀던 레코드점,

종이 책으로 인쇄된 나의 첫 수필집을 받아 들었던 날의 기쁨,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에 실린

월든 캠프는 나를 아름답고 치열했던 나의 40대로 데려갔다. 방학 때마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과 캐나다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석했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캐나다 여름밤의 캠프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의 반짝임, 호숫가의 황홀한 저녁노을을 나는 기억한다.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에너지에 대한 감사함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느껴본다.

하이테크가 최고로 발달한 디지털 시대지만 아날로그적인 정서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너무 삭막한 아이들로 자라지 않을까.

인터넷 주소를 찾아 월든 캠프를 둘러보았다. 자연의 혜택 속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는 손주들을 생각하니 어쩌다 우리가

이런 환경에 처하게 되었나 반성해보게 된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연의 고마움, 속도에 치우쳐 놓쳤던 아날로그의 향수가 그리워진다.


‘모든 오래된 것이 머지않아 새로운 것으로 탄생할 것이다.’

스티븐 킹의 이 말을 새기며 요즘 트로트가 새로 돌아와 인기몰이를 하듯 또 어떤 것이

돌아와 우리의 허를 찌르게 될지 기대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리더의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