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by 민정애

자꾸 눈물이 난다.

책을 읽으며 계속 찔끔거렸다. 마음이 아파서,

7년간 100여 명의 치매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을

담담히 풀어쓴 어느 요양보호사의 글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 얹어진다.

저자는 40살 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재난이 닥쳤다.

마포대교 위에서 두 시간을 강물을 바라보다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영등포에

있는 노숙인 쉼터였다. 그곳에서 삶의 희망을 잃은 노숙인들을 보며,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다잡고 요양보호사가 된다.


P75

‘요즘 요양원엔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일상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한 분들이 아주 많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또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치매 노인들은 말 없는 강요를 받는다.

소외될 것을, 조금 멀리 떨어져 줄 것을, 더는 병원 치료를 받지 말아 줄 것을, 외로워질 것을,

더욱더 고독해질 것을, 그리고 조용히 죽어줄 것을...

상대방의 의견은 묻지 않고 으레 그러려니 판단하는 독단적인 이해가 이들에게만은

유독 당연시된다.

기억을 잃었다고 감정까지 잃은 것은 아닌데,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하고

싶은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나이 먹는 것, 병드는 것, 아픈 것,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내 몸뚱이 간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자식들에게 ‘엄마 치매 걸리면 무조건 요양원에 보내라.’라고 단호하게 말한 적이 있다.

다른 병은 몰라도 치매는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업이 있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외국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시설 좋은

양로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복지 정책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적은 인원의 요양보호사들이 많은 환자를

보살피는 우리나라 정책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p111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보다 보면,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지금껏 수백 명의 노인들을 봐왔지만, 나는 아직까지 자식을 원망하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치매라는 병으로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도 자식 걱정뿐인 할머니 마음은 민들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을 위해 언제든 흩뿌려질 준비가 되어있는.’


40년 동안 두부를 팔아 아들 넷을 대학까지 가르쳤다는 할머니 얘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치매로 기억력을 잃어버렸지만 평생 두부 만들어 파는 것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요양원 침대 위에 하얀 기저귀를 펴 놓고 자기 변을 손으로 빚어 놓고 침대 난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단다. 이를 발견한 요양보호사가

“아이고 또 장사 시작하시네, 어르신 뭐하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두부 팔아야지, 내가 한시라도 손을 놀리면 우리 애들은 어찌 먹고살아?”


우리는 그런 부모를 원망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모는 자식을 원망하는 일이

없다는데.... 자식은 부모 은혜를 망각한다.


p235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그리움을 가슴속에 숨기고 있다.

그 심정을 말로 들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눈빛을 숨길 수는 없다.

할머니의 눈은 자녀들을 그리고 있는데 입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직 친정 엄마가 살아 계신다. 내 나이 68, 엄마 나이 92, 아직 몸도

정신도 건강하시니 행복이다.

동생이 모시고 있는데 '거리가 멀다, 코로나 때문이다, ' 이리저리 핑계 대며

엄마 만나러 가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다.

책을 읽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역시 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라는 뜻인 것을 알면서 선뜻 떠나지 못하는 나, 정말 못됐다.


p242


‘나는 치매 노인들이 진짜 눈물로 우는 때를 안다. 아들이 찾아올 때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나는 눈물이 많다. 아들 둘을

키울 때도 아들을 꾸지람하다가도 내가 먼저 운다.

아들한테 항상 미안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아마 미안해서 우는 것 일거다.

이 책에 나오는 요양원에서 제일 오래 있는 사람이 8년 정도 된다고 한다.

그분 아들 이야기가 나를 울렸다. 어느 늦은 밤 그 아들이 술에 취해 찾아와

면회 시간은 아니었지만 문을 열어 줬단다.

엄마 앞에 선 아들의 어깨가 흔들리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엄마...... 왜...... 안 죽어......”(나도 이 대목에서 눈물 한 바가지 쏟았다.)

병든 어머니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목수로 일하는 아들이 8년 동안이나

매달 백여만 원이나 하는 요양비용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요양보호사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p203

‘나는 죽음 앞에서 겸손해지고 삶 앞에서 다시 겸손해진다. 그들이 병들기 전의

삶을 바라보고 병든 후에 일을 생각한다.

나는 치매 환자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실은 그들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정상적인 행동임을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치매를 앓고 있으면서

타인을 걱정하는 노인의 말에 나는 감동한다.

언젠가 치매가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 그때의 내 모습이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기를, 무엇이라도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치매를 예방한다고 알려진 방법들이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에게는 그게 글인

것 같다.

치매가 나를 비껴갈지 아니면 관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글을 쓰겠다. 오늘이라 불리는 시간에.’


p244

‘미소 지으며 죽은 사람을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삶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거친 호흡이 있었고 마지막 숨을

내쉬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이상한 건 그들이 죽고 난 후였다.

그들의 얼굴은 평안했다. 입가엔 미소가 남았다. 나는 그들이 살아 있을 때를

떠 올렸다. 치매 환자로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치매에

걸린 이후에 대부분의 기억은 잊었지만, 자신들의 삶의 대한 태도는 잃지

않았다.

매일이 어제와 같은 무료한 요양원에서도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오늘을 붙잡으려

애썼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글을 썼고, 어떤 이는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어떤 이는 늘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삶의 마침표를 눈물로 찍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늘을

잡고자 노력할 것이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 웃으며 죽기 위해서.’



평상시에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항상 고요한 마음으로 화목을 지키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다짐해 본다. 그리고 글쓰기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나이 먹은 노인들의 딜레마가 ‘이제 이걸 배워서 뭐해,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충실히 살기 위해서, 웃으며 죽기 위해서라면 죽을 때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p134

'우리나라는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가 요양원에 입소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보험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고 요양원은 장기 요양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그 때문에 같은 환자라도 요양병원을 이용하면 요양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

장기요양 보험은 이용비용의 80%를 국가에서 지원하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중환자실이 생긴 이유다. 현재 요양원에는 24시간 침대에 누워 콧줄로 영양액을

섭취하는 중증 환자가 늘고 있다.'


p135

'정부에서는 치매 관리 비용으로 연간 약 14조 6천억 원을 쏟아붓고 있다. 엄청난 비용이다.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르신을 보살피는 방법이나 직원 복지가

좋아진 느낌은 없다. 수십억을 들여 지역 곳곳에 치매센터는 들어섰는데,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르신들을 보살피는데 전문적인 손길이 더해진 것 같지는 않다.

최저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소폭 상승했다.

그뿐이다.

법정 최저 금액에 딱 맞춘 금액, 휴일 수당이나 연차 수당 등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극심한 감정노동 직군에 하나인 요양보호사를 위한 상담 지원 따위는 없다.

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손가락 관절, 허리에 통증을 안고 산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참고 일하다 상태가 악화되면 자비로 병원 치료를 받든 지 회사를 떠난다.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한 직원은 산재 신청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동 못하는

어르신들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일이니 허리가 멀쩡할 수 없다.

그러나 산재보험담당자는 그건 노화현상이라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허리디스크나 손가락이 휘는 정도는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부터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요양보호사란 직업에 대해 그저 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없다면 가족 중에 하나는 자기 삶을 희생해야 한다. 오래전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갠지스강 주변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돌볼 사람이 하나씩 따라와 있는데 주로 어린 손녀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여행 가이드의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죽지 않고 몇 년씩 있는 사람이

있는데 따라온 손녀도 몇 년씩 같이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도뿐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요양보호시설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어렸을 때도 동네에 벽에 똥칠하는 할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때 그 어른을 모시는 사람은 주로 며느리였다. 그때뿐인가,

내 친구 중에도 집에서 치매 시어머니를 모신 사례가 있다.

그 친구 얼굴은 항상 우울했다.

그때의 며느리들은 착해서 모신 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모셨을 거다.

그러다 화병도 나고 그랬겠지. 여자들에게 참 힘든 시대였다.

요양보호사란 직업, 그 어려움을 대신해 주는 정말 고마운 직업이다.

마땅히 제대로 대우받아야 할 직업이다.

그 많은 예산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는 것을 잘 막아 요양보호사들의 복지에

필요한 만큼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갑자기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나는 아이들 유학시절 캐나다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때 교통사고를 당해 물리치료받는 사람을 수영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차 타고 가는데 뒤에서 접촉사고를 내 목이 삐꺽했단다. 병원 치료를 받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물리치료를 받는 중인데 환자 한 명에 물리치료사 두 명이 따라와

수영하는 것을 도왔다. 그때 그 환자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생각할

때 심하지도 않은데 두 명의 물리치료사가 따라온 것이 어색하다고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요양보호사 한 명이 여러 치매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라니

안타깝다. 보건 복지 행정 하시는 분들이 이런 사실에 귀 기울여주시길 바래본다.

10여 년 전쯤 나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때의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물며 치매노인 돌보는 요양보호사,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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