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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애 Mar 29. 2024

우리 나이

나이 값

'<당부, 그대 발치에>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더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혼자 와야만 하는 이 

당신이 아니도록'


라이너 쿤체의 '당부, 그대 발치에'라는 제목의

짧은 시이지만 내 마음의 큰 울림을 준다.


이 시를 쓴 라이너 쿤체는 동독 출신의 저항 시인이다.

시인이 라디오에 출연해 시를 읽는 것을 듣고 체코의 여의사가 방송국으로 편지를 보내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지식인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던 삼엄한 냉전시대에 그들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400여 통의 편지 왕래 끝에 어렵게 결혼한 만큼 지금까지 금실 좋은 부부로 소문나 있다.

지난봄 괴테할머니로 통하는 전영애 교수님이 운영하는 여백 서원에 들러 파우스트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이 라이너 쿤체의 시를 번역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라이너 쿤체의 시와 사랑에 빠졌다. 

아주 조용하고 간결한 언어로 저항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깊은 성찰과 깨달음, 자연을 볼 줄 아는 심오한 힘일 것이다.  사회적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올곧은 시인으로 알려졌다. 동독에서 추방 당해 서독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70이 넘으니 삶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보다 혼자 남을 상대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 

부부란 무엇인가 깊은 마음으로 성찰하게 되는 나이. 

삶을 뒤돌아보며 과거의 실수조차도 소중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나이. 

부부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가족과 친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들이 가장 값지게 여겨지는 나이.  

지나온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나이. 

갈등과 불화보다 이해와 용서를 택할 줄 아는 나이. 

인생의 막바지에서 후회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의 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이. 


'당부, 그대 발치에'라는 시가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나잇값 일 거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라이너 쿤체의 시 하나 더


<우리 나이>

굽히기가 어려워지는 나이

하지만 쉬워지지

숙이기는


우리 나이 

놀라움이 커지는 나이

우리 나이

믿음에는 붙잡히지 않으며 

태초에 있었던 말씀은 존중하는 나이

라이너 쿤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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