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렙소디

by 민정애

영화가 끝나고 잠시 숙연해진다. 인생을 뜨겁게 살았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한없는 연민이 인다. 인생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전통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움을 추구했던 그의 독창적인 예술세계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고 싶다.

성 정체성의 혼동으로 때론 자기부정, 탐닉, 혼란을 겪으며 격한 감정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을 그의 공연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만은 자신이 최고라는 자존감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서야 그런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가 없을 것이다. 공항에서 짐을 나르던 이민 노동자로 살며 밤마다 스스로 밴드를 찾아 나서는 자신감은 실력이 있지 않은 사람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그는 이민자에 양성애자라는 성소수자였음에도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이 그를 버티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우린 그들의 밴드”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들에게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 메리를 위해 만든 Love of my life를 들으며 사랑하면서도 떠나야만 하는 메리의 심정이나,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이 들었을 때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며 메리의 옆에 있겠다고 절규하는 그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또 We are the champion을 부를 때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며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순간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는 관객들의 소리가 들린다. 단순히 스포츠 경기장에서 불리는 흥겨운 노래인 줄만 알았던 곡이 프레디의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며 나름의 어려움을 견딘 자신들에게 들려주는 듯한 가사에 위로받아서였을 것이다. 예술적인 창작이란 매우 예민하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담배, 술, 마약, 섹스를 탐닉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그런 것들에 심취하지 않고 건강하게 더 오랫동안 그의 음악 천재성을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가 홀로 감당해야 했던 성 정체성의 혼란, 창작의 고통, 그에 따른 고독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함부로 그의 사생활에 우리의 잣대를 댈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인지한 그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함께했던 멤버들과 다시 밴드를 결성해 아프리카 기아 돕기 자선공연인 라이브 에이드에서 그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격렬하게 쏟아 내는 장면이었다.

그는 보헤미안답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을 만들었고, 사랑했던 여인을 두고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 주었다.

어떤 뮤지션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뮤지션은 무슨, ‘나는 퍼포머(performer), 음악을 파는 창녀일 뿐’ 이라며 ‘그냥 나는 나 일 뿐이다.’(I’m just me.)라고 대답하는 그의 당당함이 나는 좋았다.

‘내가 꿈꿔온 바로 그 사람이 되어있어.’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삶을 성찰해 본다.

나는 그렇게 뜨겁게 무언가에 몰두한 적이 있었나?

나는 그렇게 뜨겁게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었나?

내가 꿈꿔온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있나?

대답은 아니, 그렇게 뜨거웠던 기억이 없다. 사랑이 뭔지, 열정이 뭔지 모르고 지리멸렬하게 지낸 시간도 많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이들 키워내느라 종종걸음 했고 크고 작은 시련을 이겨내며 뜨겁진 않아도 미지근하게나마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잘 살아낸 나도 챔피언이다 라는 억지 자부심으로 극장을 나섰다.

오늘 영화 관람은 내가 강의하고 있는 복지관 문학반 어른들과 함께 했다. 지난 학기부터 일주일에 두 시간 ‘문학의 이해와 행복한 글쓰기’라는 타이틀로 수필을 쓰며 시를 읽으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이끌고 있다. 오늘 수업시간은 수강생들의 동의를 얻어 교실이 아닌 극장으로 정했다. 영화를 보며 각자의 인생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젊은 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하며 퀸의 콘서트 장에서 환호하는 군중 속에 각자의 자리도 마련해 보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늘 새로운 경험을 하며 글감을 얻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 또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다음 기회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예술 공연, 문학 기행도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점점 단순해져 가는 노년의 생활에 활력을 더 해 드리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프레디 머큐리에 말을 가슴에 새기며 수강생들과 같이 한 점심은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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