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어젯밤 ebs세계의 명화를 통해서 ‘포레스트 검프’ 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평균 보다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데다 척추 이상으로 걸음까지 불편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상영 시간 내내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오늘 아침 남편에게 그 감동을 전하고 싶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 마음과 달리 내용이 매끄럽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어머 내가 왜 이러지 어제 밤에 본 내용이 잘 전달이 안 되니 이게 늙는 건가? 기억력이 떨어진 건가? 뇌의 저장능력이 저하된 건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온다. 그동안 강의도 오랫동안 해 왔고 대중 강연을 통해서 설득력이 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디서든 소통의 문제는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화를 하다가도 다음 단어가 생각이 안나 당황할 때가 있다. 또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은 어젯밤에 읽은 책의 내용이 오늘 아침에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어젯밤에 영화를 보고 그렇게 감동했으면서 오늘 제대로 전달을 못 하는 나. 정말 실망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이 들어가며 기억력은 쇠퇴하지만 이해력은 더 낳아진다고 우기며 글쓰기로 만회해야겠다 마음먹는다. 글을 쓰며 ‘포레스트 검프’ 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엄마가 그러셨어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란다.
어떤 맛을 먹게 될지 아무도 모르거든!”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명대사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검프를 보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 시킬 수 없다는 교장을 엄마가 어렵게 설득해 입학 시킨다. 처음 스쿨버스를 타던 날 모든 아이들이 자기 옆에 앉지 못하게 하는데 제니라는 여자 아이가 옆자리에 앉아도 좋다고 말해준다. 그 후 제니와 단짝이 된다. 제니 역시 아버지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다.
어느 날 검프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쫒아오자 그걸 피하기 위해 달아나다 보조기 없이도 달릴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뒤에는 역시 ‘달려!’ 라고 외치는 제니가 있다.
고등학교 때는 불량배들을 피해 전력질주하다 대학교 미식축구 경기장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그때 감독에게 발탁되어 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고 위험한 전장에서 동료를 구한 결과로 훈장을 받게 된다. 훈장을 받는 자리에 히피들이 반전 운동을 한다. 그 자리에서 제니를 다시 만나지만 제니는 검프 곁을 떠난다. 검프는 제니의 모든 행동을 그대로 받아드리며 한 순간도 제니를 잊지 않는다. 한 편 제니는 히피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월남전, 마약, 인종차별, 케네디 암살, 닉슨의 워터케이트 사건, 히피문화, 존레논 엘비스프레스리 스티브 잡스 까지 미국의 근현대사가 영화 속에 펼쳐지는 것도 흥미롭다.
세계 최강의 미국도 얼룩진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 소용돌이치는 사건들 속에서 사회를 탓하지 않고 정직함과 친절함을 무기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 나가는 주인공의 우직함을 배워야겠다. 물론 검프 뒤에는 강인하고 헌신적인 엄마가 있었다. 영화를 리뷰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본다.
‘인생엔 저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바람 따라 떠도는 건지 모르겠어. 난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생각해.’ 검프가 제니의 무덤 앞에서 한 말이 아직 내 머리에 맴돈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영화가 난무하는 시기에 내 마음을 감동시킨 영화의 여운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