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선 내가 좋다.
나이 50이 넘도록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 하는 열정이 식지 않은 나를 좋아한다. 또 남들이 모두 미워하는 사람도 나에게는 밉지가 않으니 그 또한 얼마나 축복인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를 좋아한다. 마음이 넓은 남편이 좋고, 그 남편을 낳아 길러주신 시부모님이 좋고 피아노를 잘 치는 속 깊은 큰 아들이 너무 좋고, 클라리넷 연주를 잘하는 등 예술적 기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 난 줄 알고 사는 작은 아들이 좋아 못 견디겠고 이렇게 사랑이 철철 넘치게 나를 키워주신 친정 부모님이 한없이 좋다.
나는 아침을 좋아한다. 특히 비 온 다음날에 봄날 아침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채도가 점점 높아지는 싱그러운 5월의 정발산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 아래로 보이는 전원주택의 깨끗한 지붕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나의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나는 여름날의 풀벌레 소리를 좋아한다. 새벽에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면 싱그러운 새벽 공기와 함께 밀려오는 풀벌레들의 오케스트라가 나를 행복의 구름 위로 올려놓는다.
나는 높은 가을밤 하늘에 떠 있는 창백한 달빛을 좋아한다. 그 투명한 달빛을 벗 삼아 워즈워드의 시 한 편을 읊을 때면 온 우주를 다 가진 들 그것보다 행복할까.
나는 눈 내리는 겨울 아침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춘기 소녀 시절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이 다 좋다.
나는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면 들려오는 남편의 ‘잘 잤어?’라는 부드러운 한 마디가 나로 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 나는 남편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평안을 느낀다. 나는 허그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허그는 나를 얼마나 황홀하게 하는가, 좋아하는 사람과 하루 30분의 허그는 모든 질병을 낮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해맑은 얼굴에 가식 없는 천진한 웃음이 나는 좋다. 나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특히 팝송 부르기를 좋아한다. 아바가 좋고, 존 덴버도 좋고, 요즈음은 셀렌 디옹을 좋아한다. 사랑이 주제인 노래가 특히 좋다. 그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내 가슴을 얼마나 찡하게 하는가. 나는 음악 듣기 또한 좋아한다. 베토벤도 좋고, 모찰트도 좋고,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는 더 좋다. 나는 춤추기를 좋아한다. 차차차도 좋고 자이브도 좋고 우아한 왈츠는 더욱 좋다. 섬세한 호흡으로 하는 한국무용 또한 나를 매료시킨다.
나는 르노와르도 좋고 피카소도 좋고 빈센트 반 고흐에 예술적 열정은 더 좋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하며 신비로운 자연의 숨결을 감지할 수 있어 좋고 여행길에 우연히 만나지는 좋은 사람과의 대화가 나를 부자로 만든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 ‘가난은 결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빛이 되기 어렵다’는 신영복 선생님 말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다 할 수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식으로서의 도리, 며느리로서의 도리, 부모로서의 도리, 기타 인간관계의 도리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필히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는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신은 우리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셨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넉넉지 못해 누리지 못할 뿐이다. 나는 이 세상이 다 좋다. 너무너무 좋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