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샾과 플랫이 있듯이

by 민정애

나는 중학교 때부터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의 가정 형편으로 감히 부모님께 피아노 배워달란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피아노를 배웠었다. 그런데 바쁜 시간을 쪼개서 배우니 그때는 빨리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진도 나가는 것에만 신경을 쓴 것 같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지금처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나이 들어 피아노를 치다 보니 간단한 선율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늦은 저녁 남편과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 DJ가 이루마의 피아노 곡 이라며 river flows in you(당신 안에 흐르는 강물)를 들려주었다.

때마침 어두운 창밖으로 분분히 날리는 벚꽃 잎과 어우러지는 피아노 선율이 나의 마음을 한없는 행복으로 도취시켰다. 그 제목을 기억했다가 이튼 날 서점으로 달려가 악보집을 샀다. 가장조로 되어있는 악보는 한동안 피아노를 쉬었던 나에게는 좀 어려웠지만 연습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생각으로 설거지하다가도 한 번, 청소를 하다가도 한 번,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한 번, 꾸준히 연습을 한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물론 아무리 연습한다 한들 이루마처럼 완벽한 소리는 못 내지만 예순여섯 살의 할머니인 내가 돋보기를 쓰고 이 정도의 소리를 낸다는 것에 만족한 미소가 절로 난다.

이곡은 샾이 세 개 붙어 있는 가장조 곡이다. 샾이나 플랫이 많이 붙어 있는 곡을 연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아무것도 붙지 않는 다장조 곡은 연주 하기는 쉽다. 하지만 소리는 샾이나 플랫이 붙어 있는 곡이 훨씬 아름답고 정교하다. 피아노 건반을 생각해 본다. 흰건반 중간중간에 검은건반이 있다. 반음을 올리라는 샾음 이고 반음을 내리라는 플랫음이다. 반음을 올리거나 내릴 때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되듯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늘 똑같은 일상이 이어진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피아노 건반에도 인생이 있고 음악에도 인생이 있다. 어떤 곡이든 꼭 어려운 부분이 한 군데씩 있다. 플랫과 샾이 많이 붙은 부분이라든가 8분 음표 16분 음표 32분 음표 등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는 부분은 정말 많은 연습 없이는 정확한 소리를 내기 어렵고 특히 나처럼 나이 들어 시작한 사람들은 정확한 음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던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음대 입시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좀 틀리면 어때, 나만 즐거우면 되는 거지. 내 마음대로 칠 거야 내 감정에 맡겨야지 32분 음표를 16분 음표로 그것도 불가능하면 8분 음표로 치면 되지 누가 뭐라고 할 거야, 세게 쳐야 할 때 여리게 치는 것도 내 마음이야 자유롭게 즐기자.

그때부터 나는 클래식 보다. 재즈 피아노를 즐긴다. 이제 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인생도 나에게 맞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따라 가려하지 말고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거기에 어울리는 플랫 음을 내면 될 것이고 즐거운 일이 생겨도 반음만 올리는 샾 음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살아가자. 반음씩만 올리고 내려야지 너무 많은 음을 올리거나 내리면 화음이 안 되듯 우리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인생의 샾과 플랫을 기꺼이 즐기며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조차 행복을 느끼며 지족 한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현대인에게 주는 헤르만 헷세의 편지가 떠오른다.

‘이성과 감성의 하모니를 자아내는 인생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악보에 그려 넣을 음표가 필요합니다. 화음에 음표는 책, 자연, 예술입니다.’

책은 무지의 알을 깨트리는 힘을, 자연은 욕망의 알을 깨트리는 힘을, 예술은 고정관념의 알을 깨트리는 힘을 여러분께 선사할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세 친구의 도움에 의지해 알의 껍질을 부수고 성숙의 하늘로 날아오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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