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고독

by 민정애

며칠 전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던 날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비가 와서 그런지 괜히 센티해져서 전화를 했단다.

“정애야, 날씨 탓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외롭고 싱숭생숭하고 그렇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로버트 킨 게이드 같은 멋진 남자 어디 없을까? 이런 날 그런 사람하고 차라도 마시면 좋을 텐데.”

“꿈 깨,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니? 어디까지나 소설의 주인공일 뿐이야.”

“그래 네 말이 맞다. 꿈 깨야지, 얘 우리 양 희은 콘서트라도 보러 가자, 이 가을을 그냥 넘기기는 너무 아쉽지 않니?”

“그래 좋은 생각이다. 나도 음악회 한 번 가고 싶어서 남편에게 그렇게 귀띔을 했는데도 같이 갈 희망이 안 보인다. 잘 됐다. 우리끼리 가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발산의 고운 단풍 위로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나도 로버트 킨 게이드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40대 초반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소설가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부도덕한 불륜 이야기를 왜 그 선생님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40대 중반에 다시 한번 그 책을 읽었을 때 프란체스카에게 연민을 느꼈다.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예이츠의 시를 읊조리던 프란체스카가 낭만도 에로티시즘도 촛불 밝힌 부엌에서 춤을 추는 것도,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남자의 멋진 감정도 없는 무심한 시골 농부의 아내가 되어 무심한 세월에 밀려가고 있을 때 그를 다시 춤출 수 있게 만든 멋진 남자를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선뜻 따라나서지 못한 그녀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었다. 나이 50이 된 지금 나의 생활도 무심한 농부의 아내로 무미건조하게 살았던 프란체스카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음악회 한 번 같이 가자고, 가까운 곳이라도 좋으니 여행 한 번 가자고 해도 그저 무심하게 흘려버리는 남편, 일요일이면 골프장으로 축구장으로 잘도 다니며 저녁이면 친구들과 술자리는 자주 가지면서 아내의 외로움 따위는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 여자의 여린 감성을 전혀 터치할 줄 모르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갑자기 로버트 킨 게이드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어 진다. 외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어로 된 그 책을 빌렸다. 같은 책을 세 번이나 읽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는 지루할 것이고 영어 실력도 체크해 볼 겸 원어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삼일 동안 그 책을 다시 한번 탐독했다. 지난번 읽었을 때는 프란체스카의 안타까운 사랑만을 생각했던지 로버트 킨케이드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킨케이드에게 빠지고 말았다. 힘들여 일하고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남자들에게만 나오는 강인하고 힘차게 움직이는 근육을 가진 남자,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여자를 소유할 줄 아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와 사막의 모래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몸바사의 발코니에서 브랜디를 마시게 해 주고 아라비아의 범선이 돛을 달고 아침의 첫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남자, 피레네 산맥에 있는 바크족이 운영하는 여인숙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가고 싶은 남자,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와 함께 떠나지 못함을 이해하며 자기만의 욕심을 버릴 줄 아는 남자, 프란체스카와 헤어지며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은 남자, 그가 바로 로버트 킨케이드이다.


나는 오늘도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자는 무심한 남편에게 아내가 언제 왜 무엇 때문에 외로운지 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에게 킨케이드이기를 기대하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쓸쓸한 가을이 홀로 단풍을 물들이고 있다.(2002)










[출처]늦가을에 고독|작성자 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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