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과 수필”은 내가 지난해부터 문화센터에서 강의하는 클래스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수필반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수필을 쓰기 전 감성을 다듬는 방법으로 팝송을 겸하기로 했다. 팝송 가사에는 시적인 표현과 철학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에 수필을 쓰려는 사람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 진행 방법은 먼저 팝송 한 곡을 가사 해석과 함께 배우고 노래방 기계의 반주와 함께 감정을 가미해 불러본 다음 각자 써 온 수필들을 낭송하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지 서로 토론한다. 이 시간을 통해서 서로 배우고 깨달으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지으며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된다. 처음에 강의를 맡을 때는 잘 가르쳐야 된다는 부담 때문에 강의 준비를 나름대로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수필은 글재주와 이론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연륜이나 경험, 깊은 자기 성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얕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며 각자 자신의 성품을 심안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나부터 말을 줄이기로 했다.
여학교 시절부터 팝송을 즐겨 불렀지만 그때는 그저 내용도 제대로 모르며 따라 했었다. 설령 내용을 알았다 하더라도 사랑과 인생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깊은 맛을 낼 줄 몰랐다. 그저 친구들이 잘 못하는 영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쉬는 시간에 내 책상으로 몰려드는 친구들에게 ‘화이트하우스’ ‘체인징 파트너’ '딜라일라'등을 우리말로 적어주며 열심히 가르쳐 주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인다.
요즈음 수업시간에 내용을 음미하며 다시 불러보니 팝송 가사에도 얼마나 많은 사랑과 철학이 담겨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팝송의 내용은 사랑이 주제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방대하고 미묘한지 때로는 그 안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과 고통만을 남기는 것이 사랑 같기도 하다.
지난 학기에는 카펜터스의 ‘Top of the world'를 부르며 연애시절을 떠 올리기도 했고,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인 ‘My heart will go on'을 배우며 안타까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련한 추억으로 빠져 들기도 했으며 나나 무스쿠리의 ‘Why worry'를 배우며 비 온 뒤에는 반드시 해가 뜬다는 가사를 음미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기도 했다.
You fill up my senses...(나의 감성을 채워주는 그대...)로 시작되는 존 댄버의 애니의 노래를 배울 때는 왜 우리의 남편들은 우리의 감성을 로맨틱하게 채워주지 못할까 하며 멋없는 남편들을 성토하다가 남편에게 바라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찾자고 자위하며 쓴웃음을 져 보기도 했다. 얼마 전 "please release me let me go for I don't love you any more"(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제발 놓아주세요)라는 내용의 'release me'를 배울 때 일이 생각난다. 사십 대 중반의 예쁘장한 주부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현재 처한 자기의 입장을 그 가사가 대변해 주고 있다는 말을 하며 정말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하자 몇몇 수강생들이 자신들도 마찬가지라며 숙연해졌다. 꼭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만 하며 자기를 잊고 살아온 자신들이 이제라도 자아를 찾고 싶은 몸부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인간에게는 여섯 가지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한다. 생존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힘의 욕구, 자유에 대한 욕구, 재미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한다. 오늘은 새로운 가을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또 많은 주부들이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의 교실을 찾을 것이다. 나는 오늘 그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할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이라고 강조할 것이다. 우리 주부들이 착각하는 것은 남편이 성공하면 자신의 행복이 정비례할 것이라고 믿으며 자기 계발은 뒷전으로 미루었다가 그것이 안 되면 자식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자식의 성공 또한 나의 행복은 아닌 것이다. 용광로 같이 뜨거운 가슴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라고 말할 것이다. 배우면서 재미의 욕구를 채우라고 말하고 싶다. 욕구는 욕심과는 다르다. 꼭 필요한 것이다.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행복과 발전은 없는 것이다. 성공한 남편과 자식의 뒤에서 초라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량없이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가족을 보듬으며 그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노력할 때 행복은 우리의 가슴에 안착할 것이다.
베란다 문을 살짝 열어본다. 빨강 물이 들기 시작한 공원의 단풍나무 잎에서 행복이 일렁인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기 위해 팝송 가사집을 챙겨놓고 파운데이션을 정성껏 두드린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