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봄날이 대책 없이 마냥 흘러가는 것이 아쉽다.”
지인에게서 이런 문자와 함께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의 노래를 같이 보내왔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로 인해 이 번 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봄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또 그다음도 계속 나에게 당연히 다가오는 것처럼 생각했다.
지인의 문자를 받고 생각하니 정말 노년의 우리들에게는 다가오는 새 계절들이 아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잘 맞아들이고 잘 보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고립되었지만 그래도 봄은 저 혼자 무르익어 꽃을 피우고 꽃을 떨군다.
이 황홀한 봄날 코로나를 핑계로 스스로 고립시켰던 마음을 풀어 우리 부부는 그동안 미루었던 강릉으로의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생태마을 가는 길에 영월쯤인가? 예쁜 곳이 있어 차를 세웠다. 여기는 찻집인데 문이 닫혀있다.
영월 섶다리
목적지는 강릉 경포대, 가는 길에 평상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평창 생태 마을에 들렀다. 황창연 신부님이 이끄는 생태마을에 대해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고 그곳에서 만드는 청국장, 된장 간장을 사 먹는 사람으로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평상시에는 피정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볐을 이곳이 코로나로 인해 조용했다.
입구에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괜히 불청객이 된 느낌이다.
전염병 때문에 종교시설에서도 사람 오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기가 믿어지지 않는다. 신부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나오니 약간 섭섭했다.
나는 종교는 다르지만 신부님의 강론을 자주 듣는다.
“남에게 인정받고 지지받고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이해하면 된다. 자기에게 잘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고 연구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면 중생이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면 부처다”
나는 신부님이 하셨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새기며 생태마을을 둘러본다.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내 몸이 이곳에 있으니 내 마음도 저절로 고요해진다. 그러나 내 몸이 복잡하고 번잡한 곳에 있더라도 마음만은 평정심으로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수양일 것이다.
고요해진 감사한 마음으로 강릉으로 향한다.
성 필립보 생태마을
예약해 놓은 호텔방에 들어서니 창문 가득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저절로 심호흡이 된다. 바다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한없는 동경의 세계로 이끈다.
남편과 손잡고 백사장으로 향한다. 철 이른 바닷가는 한산하다. 지금 이 순간 그냥 행복하다. 젊은 시절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아 아웅다웅 지지고 볶고 살 때도 있었지만 이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란 걸 터득하는 시간이다. 다시 정동진으로 향한다. 강릉은 여러 번 와 봤어도 정동진은 처음이다. 정동진은 횟집이 즐비해서 생각보다 낭만적인 바닷가는 아니었지만 크루즈 모양으로 지어진 정동진의 랜드마크인 썬쿠르즈 호텔, 금방이라도 바다로 달려 나갈 수 있는 크루즈 모양의 호텔을 보며 다음에 하루쯤은 이곳에서 한 번 머물며 일출을 맞이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하루 종일 운전을 했으니 피곤한 모양이다.
이제 남편의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가 보다. 본인은 아직은 괜찮다고 큰소리치지만 70이 넘었으니 이젠 매사가 조심스럽다.
나는 평상시 늦게 잠자는 버릇 때문에 뒤척이다 발코니로 나간다. 검푸른 밤바다 위로 희미한 초승 달빛이 나를 신비의 세계로 데려간다.
순간 송나라의 시인 소옹이 지은 ‘청야음(淸夜吟)’이란 제목의 시가 떠 오른다.
淸夜吟(청야음)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
달이 중천에 떠 있고
바람이 수면에 일 때
이렇게 청아한 뜻을
아는 사람 적으리.
자연 앞에 서서 시 한 수 마음에 새긴 것 또한 이번 여행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순간 살아 숨 쉴 수 있어 이 귀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튼 날 새벽 4시 40분 커튼 사이로 여명이 붉게 물들어 온다. 동해안이라 그런지 일출이 이른 모양이다. 침대에 누워 수평선에서 일렁이는 여명을 바라보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발코니로 나간다. 신선한 바람이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우며 속삭인다. ‘지금까지 잘 살아냈다, 지금 이 순간이 잘 살아낸 보상이다.’
어느새 남편도 일어나 나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우리 부부는 함께 발코니에 기대어 황홀한 일출을 맞이했다. 감사한 순간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해변가로 나간다.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흔들 그네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다. 문득 중학교 때 배웠던 사공의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 나간다.
이 배는 달 맞으러 강릉 가는 배
어기여 디여라차 노를 저어라.
호텔 뒤편에 있는 강릉 경포호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와 또 다른 고요함이 느껴진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고 호숫가에 피어있는 야생 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둘레길이 너무 길어 가다가 되돌아왔다. 어느새 조금만 무리하면 무릎에 싸인이 오는 나이가 되었다. 가슴 떨릴 때 여행해야지 다리 떨릴 때 여행하면 늦는다는 말이 실감 나 쓴웃음이 나온다.
체크 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선 후기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인 선교장에 들러 잘 전시 보관된 생활용품, 예술품, 의상 등을 둘러보았다.
보기 드문 붉은 찔레꽃이 경포호 주변에 피어있다. 하얀 찔레꽃은 흔히 볼 수 있는데 붉은 꽃은 처음이다. 반가운 마음에 찰칵.
그다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에 들러 문화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며 둘러보았다.
오죽헌에서 나오다 보니 하얀 꽃이 들판 가득 피어있다. 무슨 꽃이 저렇게 예쁠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감자꽃이다. 이렇게 넓은 감자밭을 보니 여기가 강원도라는 것이 실감 난다.
강릉 IC를 지나 우리 집이 있는 용인으로 향하는데 ‘대관령 양 떼 목장’ 안내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까지 온 길에 안들들 수 없지 않은가.
높은 산등성이를 잘 가꾸어 목장을 만들었는데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은 보이지 않고 먹이 주는 체험장에 옹기종기 모여 사람들이 주는 건초를 받아먹고 있다. 입장료에 먹이 주는 체험
티켓이 포함되어있어 나도 호기심에 참여해 보았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화창한 봄날에 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야 될 양들이 우리에 갇혀 관광객이 주는 풀을 종일 받아먹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유를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산등성이 둘레길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남편이 구두를 신었다는 핑계로 올라가길 싫어한다. 여기까지 온 길에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면 좋을 텐데, 남편이 정말 늙었나 보다 생각하니 측은하다. 중간까지 올라가다 남편 뜻을 따라 내려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의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정말 남편이 손수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봄날이 몇 해나 남아 있을까 생각하니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1박 2일 동안 의 우리 노부부의 봄날은 또 이렇게 흘러간다.
한국전쟁 직후 전쟁에 시달린 피폐해진 정신을 위로하는 곡으로 사랑받았던 노래 '봄날은 간다'를 젊은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야속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