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친구

by 민정애

나는 어릴 때 음악을 좋아했다. 아니 그때는 음악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사 학년 때 합창부였는데 합창 대회가 있을 때는 우리 학교에 풍금 밖에 없어서 십 리도 더 되는 피아노가 있는 어느 집에 가서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피아노를 실물로 처음 보았다. 그 당시 피아노가 있던 그 집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부러운 마음조차 가질 수 없는 어느 먼 나라의 일로 여겼었다. 그때 지정곡의 제목은 ‘귀뚜라미 우는 밤’이었다.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에,

멀리 떠나간 동무가 그리워져요

정답게 손잡고 뛰놀던 내 동무

그곳에도 지금 귀뚜리 울고 있을까 ‘


이 아름다운 가사가 5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내 머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지금도 귀뚜라미 우는 가을이면 그 노래를 부르며 오솔길을 따라 피아노가 있던 집으로 걸어가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리워진다.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다니던 호수돈 여중은 선교사가 세운 사립학교로 교육 환경이 그 당시로서는 참 좋았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피아노실이 복도 끝에 마련되어 있었다. 음악 선생님이 피아노 레슨을 해 주었는데 한 달 렛슨비가 300원이었다. 그 당시는 피아노 학원은 없었고 개인 교습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렛슨비가 1000원이었다. 나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의 렛슨비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얼마나 배우고 싶었으면 지금까지도 그 금액이 내 머리에 또렷이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때 나는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렛슨비 부담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무조건 엄마에게 졸랐더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을. 그때 우리 동네에서는 중학교조차도 진학을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감히 피아노 배우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음악시간이 너무 좋았고 포르테, 피아니시모, 크레센토, 디크레센토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물론 노래 실기 시험은 항상 만점에 가까웠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피아노실이 비어있으면 얼른 들어가 피아노 배우는 학생들이 펼쳐 놓고 나온 바이엘 책을 보며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며 바이엘 66번까지 혼자 터득해서 제법 비슷한 소리를 냈었다. 그 시절이 그리울 때면 지금도 가끔 바이엘 66번을 연주해 본다. 그러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이 느껴지며 눈에는 뜨거운 이슬이 맺힌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피아노를 배웠고 월급을 모아 피아노까지 내가 번 돈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생활에 쫓기다 보니 나의 친구인 피아노를 외롭게 만들었다. 이제 아이들 키워 결혼시키고 고단한 삶의 흔적으로 몇 달 전 큰 수술도 받았다. 이제 삶의 수레바퀴를 한 템포 늦춰놓고 이 세상의 수 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느껴 보고 싶다. 이제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나이 탓인지 좋아하는 곡 몇 곡만 연주해도 손가락이 아파오고 어깨가 뻐근해진다. 지금 내 나이 쉰일곱, 이제와 아무리 손가락이 아프게 연습한다 해도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내 가슴속의 열정이 식지 않은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악기를 연습하는 것은 꽃을 심는 것과 같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요즘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하루 두 시간 정도 꾸준히 피아노를 연습했다. 그러나 정말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나처럼 나이 들어 시작한 사람에게 피아노는 정말 만만한 악기가 아니다. 인내심 없이 성급하게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없듯이 꾸준한 연습 없이 피아노를 익힐 수 없다. 씨앗을 흙에 묻고 쉬지 않고 정성 들여 가꿔야만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성장통을 겪으며 때를 기다려 꽂을 피워내듯 피아노도 처음에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았다. 새로운 곡을 익힐 때까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고 다시 용기를 가져 볼 때도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꽃이 때가 되어야 피어나듯 나의 피아노 실력도 때가 될 때까지 꾸준히 연습한다면 피아노는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이다. 어제는 유치원 동요 반주곡 집을 샀다. 손주들이 놀러 오면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꼭 베토벤, 모짤트가 아니면 어떠랴, 가족이 같이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오늘도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시작으로 가을의 속삭임, 별밤의 피아니스트, 피아노맨, 영화 해바라기의 테마, 닥터지바고의 테마 썸 웨어 마이 러브 등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하며 행복에 겨워했다. 젊었을 때 깊이 몰랐던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아름다운 곡들을 들을 때마다 아직 어린 아기들인 손자 손녀들이 생각난다. 그 아이들에게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 내 자식들을 키우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 내 자식들에게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미처 다 가르쳐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깝다. 내 자식들은 그들의 자식에게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느끼게 해 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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