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문득문득 떠오르는 외로운 모습의 실루엣 때문에 마음이 무척 아파오곤 한다. 그 장면은 노을빛을 배경으로 다리가 불편한 팔십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가을 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길을 뒤뚱뒤뚱 걸어 남편의 묘소로 향하는 장면이다. 그 실루엣의 주인공이 바로 사 개월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산소로 향하시는 나의 친정어머니다. 얼마 전 내가 내려갔을 때 엄마 손을 잡고 같이 같던 길인데 그때 아직도 엄마 혼자 자주 다니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외로운 들길을 엄마 혼자 걷는 생각을 할 때마다 눈앞이 흐려진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사 개월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버지 산소에 자주 찾아가 허전함을 달래시나 보다. 육 남매 모두 외지로 보내고 시골에서 두 분이 정답게 사시다가 한 분이 먼저 가셨으니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의 심정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어 코끝이 찡해오며 가슴이 아려온다.
엄마의 텅 빈 가슴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드릴 수 없으니 안쓰럽기 그지없고 애처롭기 한이 없다. 오래전 남편과 사별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엄마는 81세이신데도 아버지를 그리워하신다. 언제쯤 마음의 평정을 찾으실까?”
그 친구 대답이
“언제쯤? 아마 돌아가시기 전에는 안 될 걸. 나는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니, 나는 처음 5년을 거의 미쳐서 지냈어. 모두들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이 세상에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괜히 섭섭하고, 세상이 텅 빈 것 같고, 아무튼 말로는 설명을 못해, 지금 12년째인데 지금까지도 그래, 그건 80 노인이나 젊은 사람이나 마찬가지 일거야,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랄까, 네가 과부가 되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워.”
“너는 남편 바람피운다고 매일 싸우느라 사이도 별로 안 좋았었잖아.”
“글쎄 살아있을 땐 그렇게 밉더니 죽으니까 못해준 것만 아쉽고 반성되고, 그게 그렇더라 부부간에 정이 좋았던 사람은 정을 못 잊어 못 견디고, 그게 부부 사이인가 보더라. 어쨌든 너는 있을 때 잘해.” 라며 웃음 짓는다.
나는 요즈음 자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나에게 가장 귀한 존재,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동안 잠자리에 들 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남편의 품을 당연하게 여기고 술 냄새나는 날은 가차 없이 따로 자자 떠밀고, 돈이 부족하면 자존심 뭉개고 했던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던가. 인간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일까. 그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하니. 그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직 내 옆에는 부족한 마누라를 끝없이 과대평가해주고 믿어주는 남편이 있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내가 아니었던가 깨달아진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죽고 나면 세상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자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뇐다. 아직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남편의 따듯한 품으로 기어 들어가면 남편도 잠결에 나를 꼭 안아준다. 그 순간 나는 신께 감사드리며 다짐한다.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유럽의 지성 앙드레 고르가 부인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 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아버지 산소에 찾아갈 때마다 허공에 대고 ‘아버지’ 하고 큰소리로 불러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고 하늘의 뭉게구름만이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고 우리는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연의 섭리 따라 흘러가는 것,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엄마가 빨리 평온을 찾기를 기도해 본다.(2010)